2021/08/14 16:31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극장전 (신작)


신지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에바는 더 이상 기동할 필요가 없게 되는가. 끝없이 반복되던 도돌이표가 드디어 끝나는 것인가. 마지막 영화의 부제는 그를 뜻하는 듯해 의미심장하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제 안노 히데아키가 이거 그만 만들겠다 선언한 게 되는 거지. 

마무리에 대한 부담감이 분명히 존재했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마무리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데 영화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마무리'의 의미가 대체 뭔데... 기승전결 중 이제 '결'인 거잖아. 그럼 그동안의 떡밥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아크도 설득력 있으면서도 감동 가득하게 매듭 지었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냐? 마지막 편에 이르러서도 안노 히데아키는 여전히 미스테리만 잔뜩 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무거운 메시지를 깊이 숨겨두는 게 아니라, 그저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영화에 때려박는다고. 그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리고 나서야, 겨우겨우 이 마지막편의 마이너스 우주라든가 에바 인피니티, 배회 등등의 설정들이 이해된다. 그 각자의 의미가 해석이 이해된단 소리가 아니고, 이거 다 그냥 감독이 멋져 보여서 욱여넣은 설정들이란 게 이해된다고. 고로 이해할 필요가 없음이 이해된다. 씨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파>에서부터 시작되어 <Q>를 통해 더욱 복잡해졌던 아스카와 신지의 관계는 어영부영 종료된다. 아스카의 캐릭터 자체가 그냥 소비된 느낌이 강한 것. 신지와의 로맨스는 커녕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에서 뭐 활약한 게 전무하다. 그 직전에 겐도의 함정에 의해 리타이어 했으니. 그런데 결말에도 제대로 안 나옴. 아야나미 레이는 더 심각하다. 그녀는 신지와 교감했고, 그와 겐도의 사이를 이어붙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끝내는 신지를 살리기 위해 몸을 날렸었다. 그리고 에바 안에서 14년을 기다렸다고. 그 짧던 머리가 장발이 될 때까지. 근데 신지는 그녀를 만나고 쿨하게 보내준다. 이제부터는 자기 인생을 살라면서. 니가 할 조언은 아니지 않냐? 

아야나미의 복제품이 제 3마을에서 소위 인간화 되는 장면은 평화롭고 좋다. 캐릭터의 여정으로써도 의미있고 알맞다. 그러나 너무 길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신지의 징징거림도 기존 TV 시리즈에 비해 더 강해진 느낌이고. <서>와 <파>에서 덜 징징 거려서 그것까지 합산해 농축 발산한 건가? 왜 갑자기 마지막 편에 와서 이래? 마리는 진짜 깨는 캐릭터. 신 극장판만의 새 캐릭터로 분명 기대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또 이상한 떡밥만 잔뜩 남기다가 졸지에 신지와 결말 장식. 얘가 신지랑 쌓아놓은 감정이 대체 뭐가 있는데... ? 왜 얘가 신지랑 이어지는 건데...? 

겐도가 자신의 입으로 솔직하게 과거와 신지에 대해 말하고, 또 아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물론 의미 있다. 그런데 또 의심이 든다. 이거 또 안노 히데아키가 자기 영화 사랑해준 오타쿠들한테 훈계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막말로 이카리 겐도의 성격과 과거 이야기들은 우리가 흔히 오타쿠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속성과 어느정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자기 영화 사랑해준 사람들을 여전히 훈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메타픽션 좀 제발 그만 하라고...

스스로의 의지로 에바에 타겠다 말하는 신지와, 그런 그를 막으려고 발악하는 분더 승무원들 사이의 갈등은 그야말로 충공깽. 왜 총 쏘고 지랄이야... 말로 하면 되지... 괜히 미사토만 피 봤잖아... 그 장면은 그 현실성을 떠나 그냥 또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이 마구 올라오는 것 같아 거부감이 일었다. 

그냥 확실해진 것 같다. 나는 이 시리즈의 팬이 아니었구나. 20여년 전에는 나름 피규어도 사고, 만화책도 읽고 그랬었는데 그 사이 내가 너무 커버린 것일까. 아니, 영상 연출자로서 안노 히데아키는 마음에 들지만 기획자이자 각본가로서의 그와는 내가 맞지 않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 뿐이지. 막판에 또 실사 장면 나와서 기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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