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3 20:27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2014 대여점 (구작)


아, 이거 진짜 할 말 없는데.

전편에서 이미 다 보여주었던 어린 시절 피터의 이야기를 굳이 그대로 리바이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복이라 지칠 뿐더러 처음 묘사되는 피터의 부모님 사망 순간은 재미까지도 없다. 루즈벨트고 나발이고 그딴 거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그냥 이딴 프롤로그 없이 바로 웹스윙 장면으로 오프닝 쳐도 됐잖아. 이거, 그놈의 미스테리 떡밥 까는 데에 아주 혈안이 되어 있구만. 나중에는 풀 기회도 없을 텐데

그래도 영화는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전체 작품들 중 가장 화려하고 멋진 웹스윙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전편에 이어 1인칭 시점을 좀 더 주도적으로 썼고, 그와중 농담과 트래시 토크를 반복하는 스파이더맨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으며, 또 그의 수퍼 파워와 거미줄 활용 능력 등까지 다 신경 썼다. 1편 이후 피터가 스파이더맨으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단박에 보여주는 오프닝. 그리고 버스터 키튼 오마주 역시 마음에 들고. 아, 수트도 원작에 가장 가까운 느낌이라 그것도 마음에 듦.

그웬의 졸업 연설은 그 자체로 그녀의 사망 플래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질 피터에게 남긴 말이기도 하고. 물론 그 모든 걸 다 알고 했던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눈치는 존나 빠른 것으로 묘사됨. 그냥 좀 거북한 표정 지었을 뿐인데 피터가 자기 아버지의 유령을 보고 있다는 거 알아채는 수준... 그나저나 2편의 피터 파커는 전편 결말에 가해진 관객들의 비판을 어디서 주워듣긴 한 모양이다. 아니면 졸업식하고 그새 철 좀 든 건가? 존나 우유부단하게 굴더니 결국 구질구질하게 이별 통보. 근데 둘이 이별하는 장면의 배경이 차이나 타운이네. 샘 레이미의 2편에서도 피터와 메리 제인이 밀당 하던 곳 아니었나? 차이나 타운이 뉴욕을 상징하는 명물 동네 중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째 액션 장면의 배경으로는 한 번을 안 나오고 다 연애질 배경으로만 쓰이는 것도 특이점. 

주인공이자 영웅인 스파이더맨도 부모로부터 그 운명을 하사 받았듯, 이 시리즈에서는 악당도 부모로부터 그 저주를 물려 받는다. 새로운 그린 고블린의 얼굴로 노만 오스본이 아닌 해리 오스본을 선택했다는 게 그 증거. 그런데 악당으로서의 비중을 떠나 해리 오스본 드라마가 너무나도 형편없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 아버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자기혐오, 어린 나이로 일류 기업의 대표 자리에 오른 부담감,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고쳐야만 한다는 압박감 등등 주어진 것은 많은데 어느 것 하나 깊이 살린 건 없다. 아, 어쩌면 주어진 게 많아서 어느 것 하나 깊이 파지를 못한 건가? 제일 심각한 건 피터와의 우정이 너무나도 약해보인다는 것. 샘 레이미의 3부작처럼 1편부터 언급되었던 존재였다면 사정이 좀 나았겠지만... 지금은 사실 별로 안 친한데 각본 때문에 급하게 친한 척하는 인상이다. 무엇보다 앤드류 가필드와 데인 드한이 잘 안 어울리기도 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악당 2인 이상 집합 금지 시켜야 한단 주장을 확인 사살한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그린 고블린은 사실 메인 빌런도 아님. 그 자리는 일렉트로의 것이고, 여기에 사이드 안주 정도의 느낌으로 라이노가 있다. 하여튼 일렉트로는 능력을 얻은지 얼마 안 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꽤 잘 싸운 편이었다고 본다. 평소에 수퍼히어로 덕후로서 능력 대방출하는 망상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자기 능력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활용력도 데뷔 무대 치고 화려했음. 날아다니는 법까지 한 방에 익혔으니 그거면 말 다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일렉트로는 시푸르댕댕 전기 인간일 때보다 맨얼굴 맥스일 때가 더 무서운 것 같다. 면도 하며 거울 속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스파이더맨 덕후라니... 이 사람은 찐이다 싶어서 무서움. 혼자 살면서 스파이더맨에 빙의해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광기 자체가 실사 영화 시리즈 통틀어 가장 무서운 악당 같음. 직장 상사가 스파이더맨 언급만 해도 잡아 족치는 상상을 하다니 이거 진짜 또라이 아니냐? 무엇보다 스파이더맨 별자리가 사자자리라는 건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이 세계 인터넷에도 2차 창작하고 설정 놀이하는 스파이더맨 덕후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는 건가?

오스코프 사내 내레이션 진짜 과하다. 사내 구경하려고 온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로비에서만 방송 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 회사는 방송을 설비실에서도 틀고 있음. 물론 관객들을 이해시켜주기 위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친절함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겠지만...

피터가 부모님과 얽힌 오스코프의 비밀을 자신의 방 한쪽 벽에 하이스트 영화에서 범죄 계획 세우듯이 정리해두는 몽타주. 멜로디컬한 노래까지 곁들여져 참으로 로맨틱하게 연출해놓긴 했는데 존나 뻔해서 암담. 그웬 사진 붙여두고 거기에 포스트잇으로 "너까지 잃어야 해?"라고 써두는 감성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내가 스파이더맨 영화 보면서 이런 것까지 봐야해?"

웹스윙 연출과 더불어 스파이더 센스 연출도 정말 잘 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라이노 수트 리디자인도 그냥 넘어가줄 수 있고. 그러나 영화에 그 외 나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악당들 분량은 또 지들끼리 빼앗아먹어 애매하고, 이미 깔아둔 미스테리 떡밥 강화에 향후 유니버스 속편 떡밥 배치까지 추가로 하다 웬만한 런닝타임 다 잡아 먹음. 피터와 그웬의 로맨스는 막판에 그웬 죽는 거 빼고 다 뻔하고... 사실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나중에 멀티버스 통해 다시 안 나와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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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21/08/23 20:39 # 답글

    수트는 시빌 워가 가장 원작스러웠다고 보이지만...(재현도로 따지면 일렉트릭 컴패니가 최고라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우스개)
  • CINEKOON 2021/09/22 16:04 #

    눈 조리개 연출은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 SAGA 2021/08/29 14:30 # 답글

    슈트가 가장 원작스러워서 그건 볼 맛이 조금 나더군요. 스파이더 센스 연출은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 중에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예지 느낌까지 나는 어메이징 버전에 비해 MCU 버전은 연출이 별로라고 생각해서...^^;;;
  • CINEKOON 2021/09/22 16:05 #

    솔직히 MCU의 스파이더맨도 좋아하지만, 그 영화 안에서 스파이더 센스라고 할 만한 연출이 있었나 싶네요. 눈 조리개 조였다 푸는 것 정도랑, <파 프롬 홈> 말미에 드론들 때려부수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건 그냥 액션이고...
  • 잠본이 2021/09/27 18:58 # 답글

    아버지 떡밥은 사실 1편 때 정리했어야 했는데 뒤로 미루는 바람에...(아득)
    고블린은 아껴뒀다 3편에 내놓는게 좋지 않았나 싶었죠. 딱 레이미 3의 베놈 꼴이 나버려서.
  • CINEKOON 2021/10/06 16:00 #

    이 시리즈에서 악당은 2인 이상 집합 금지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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