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놉시스와 예고편을 접했을 때 일반 관객들이 궁금해할 수 있는 주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번째는 해변에서 왜 저런 현상 또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두번째, 저 기현상의 규칙 또는 법칙은 무엇인가? 당연하지, '왜'와 '어떻게'가 가장 먼저 궁금할 수 밖에 없으니. 그렇다면 샤말란은 이 두 가지 포인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밀려오는 스포일러!
역순으로 하자. 먼저 "어떻게?"란 질문에 대한 대답. 이건 잠깐의 대사로 설명된다. 해변에 갇힌 사람들은 30분 마다 생물학적으로 2년씩 늙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건 정자와 난자의 체내수정 역시 마찬가지. 아, 하나 더.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해변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음. 해안을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절벽은 일종의 자기장을 내뿜어내어 그 곳을 통과해 지나가려는 사람들을 다시금 안으로 내뱉는다. 여기에 파도는 또 어찌나 높은지, 수영으로 여길 벗어나는 것도 거의 불가능. 이런 식으로 게임의 규칙들은 어느정도 정립된다.
문제는 "왜?"다. 그리고 이건 영화의 반전과 직결되는 질문이고, 또 한때 반전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던 샤말란으로서는 그 자체로 노이로제가 될 만한 질문이다. 사실 샤말란은 반전을 떠나 꽤 좋은 연출력을 갖고 있는 감독이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그 뒷부분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식스 센스>에는 반전 말고도 감쪽 같은 우아함이 존재했다. <언브레이커블>의 프레임 구도 역시 주제적 테마를 잘 잡아 비틀어 내는 일종의 경지였고, 이후 평가가 조금씩 하락하긴 했지만 <빌리지>나 <해프닝> 등에도 최소한의 기품있는 연출이란 게 존재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샤말란은 '반전의 대가'로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버렸다. 아마 본인도 그러한 자신의 수식어에 분명 부담을 느꼈으리라. 아니, 어떡하냐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보며 '반전의 대가'라고 추켜세워주는 마당인데 신작 찍을 때 그걸 고려 안 할 수가 없잖아. 물론, 그 노이로제를 잠깐 벗어던진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도 있었다. 영화는 망했을지언정, <라스트 에어벤더>와 <애프터 어스>에는 이렇다할 반전이 없었잖아. 아주 충격적인 건 없었다고. 아, 오히려 그 때문에 다시 이런 반전 영화로 회귀한 것인가? 그 두 편이 쫄딱 망했기 때문에?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진정한 복귀작이란 소리를 들었던 <더 비지트>부터 최근 <글래스>까지 작든 크든 반전 요소가 모두 그 안에 존재 했으니.
<올드> 역시 그래보인다. '반전의 대가'라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 때문에 스스로가 짓눌려 버린 모양새. 해변에서의 기현상 하나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해변에서의 장면들은 특유의 막무가내 전개 정도만 빼면 빛나는 순간들도 많다. 자극적이긴 해도 꾸준히 관객들에게 충격을 전달하고, 또 거의 한 세기에 달하는 인간의 인생을 타임랩스로 관조해 무언의 깨달음마저 주거든. 해변에 갇히기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 부부는 아내의 시한부 판정과 불륜 행각으로 인해 이혼할 생각이었다. 그들에겐 지금 당장의 문제가 중요했던 것. 그러나 갇힌 해변에서 인생을 끝까지 경험하고 난 뒤엔 그 둘 모두 생각이 바뀐다. 그 모든 고민과 번뇌들이 다 한 순간일 뿐이었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지지고 볶으며 싸웠던 것일까. 둘은 천천히, 그래서 아름다운 화해의 순간으로 들어선다. 여기에 또 언급할 만한 다른 인물로는 외모에만 집착했던 한 젊은 여성이 있을 것이다.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 곳곳을 활보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던 이 여자는 그 모든 젊음의 아름다움들이 한 순간일 뿐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채 흉측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들은 분명히 인상적인 순간이고,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보게 되는 문제들이다. 이 해변에서의 일들 만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샤말란은 거기에 이상한 반전을 덧붙여냈다. 이 모든 기현상을 알고 있거니와 심지어는 조사까지 하고 있던 제약업체의 등장. 아니, <글래스>도 그렇고 샤말란 요즘 비밀조직에 맛들렸나? 그래도 <글래스>의 그 단체는 그럴듯한 명분과 간지라도 있었지. 근데 여기 제약회사는 뭐야? 몇 사람을 희생시켜 인류 전체를 구하자는 공리주의적 악당들인 건데, 이게 앞서 말했던 해변에서의 주제와 적절히 붙어 있는 건지 의문을 산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모양새. 그리고 제약회사라서 사악한 멋도 없음... 차라리 <케빈 인 더 우즈>처럼 이 요소를 좀 더 일찍 등장시켜 제대로된 드라마를 쌓든가... 지금은 영화 끝나기 15분 전에 후다닥 설명 해치워버리는 느낌이잖아.
다 떠나서 전개도 엉망이다. 사실상 반복. 해변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손가락질 하며 "다들 이것 좀 보세요!"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 그거 구경. 그리고 잠시 소강 상태 뒤에 또 다른 구석에서 누군가가 "다들 이것 좀 보세요!"라고 하면 또 거기로 몰려가 구경. 이 포맷의 반복이다. 막말로 이야기하자면, 시나리오 좀 쉽게 썼겠다 싶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샤말란 특유의 낚시였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꽤 그럴듯한 떡밥으로 유혹하길래 덥석 물었는데 매운탕 양념 바르는 건 결국 나였고. 반전에 대한 강박이 아예 없는 감독이었다면 이 제약회사 설정이 과연 있었을까? 아예 빼는 게 낫고, 굳이 넣을 거면 좀 더 탄탄하게 복선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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