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4 20:59

인질 극장전 (신작)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세이빙 미스터 우>도 그랬지만, 특정 유명 배우가 자기 스스로를 연기하는 영화들이 은근히 있었다. 존 말코비치의 <존 말코비치 되기>가 있었고 또 장 끌로드 반담의 <JCVD>도 있었지. 한국에는 <여배우들>도 존재했고. 그리고 또 그 설정이 핵심인 영화는 아니지만 <오션스 12>가 재밌는 유일한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다. 거기서는 로버트 줄리아가 가짜 로버트 줄리아로서 줄리아 로버츠 행색으로 다니다 진짜 브루스 윌리스를 만나 자신이 가짜 줄리아 로버츠라는 걸 들키게 됐었잖아. 듣기만 해도 얼마나 웃기냐, 이게.

황정민을 데려다 황정민 연기를 시킨 <인질>은 그 점에서 아쉬운 감이 있다. 배우로서 황정민을 소환하는 영화였다면 응당 그 배우의 기존 이미지와 편견, 실제 성격 등을 적당히 섞어 버무렸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아까 말한 <오션스 12>에서의 줄리아 로버츠도 그랬지만 <JCVD>의 장 끌로드 반담이 그쪽으로는 진짜 대단하잖아. 한 물 간 왕년의 액션 스타로서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영화였다고. <인질>도 황정민을 좀 더 황정민으로서 내던졌어야 했다. 그리고 뭣보다 실존 배우를 실존 배우로 캐스팅한 거면 그건 완전히 현실적인 톤으로 돌격하겠다는 의미잖아.

그러나 영화는 완전 반대로 간다. 현실적으로 가야 했을 설정을 가져다 놓고도 장르적으로 내달린다. 여기에 장르 특유의 비현실적 묘사들 역시 뿜어져 나오고. 막말로 인질로 잡힌 주인공 황정민은 현실적인데 그를 인질로 잡은 악당은 비현실의 끝. 인질범들의 두목인 최기완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범죄도시>의 장첸, <세븐>의 존 도우를 마구 섞은 인물이다. 그 조합이 자연스럽고 아니고를 떠나서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장르적인 인물이란 이야기. 근데 이럴 거면 대체 왜 주인공을 진짜 황정민으로 상정했냐는 거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꼭 황정민이 아니여도 됐다. 그냥 홍길동이었어도 충분히 납득 갈 만한 이야기였다는 거. 

이렇게 좋은 컨셉을 잡아두고도 그걸 활용하지는 않는 영화지만... 그래서 메타 영화로써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자극 위주의 단짠단짠 전개가 맛깔나긴 하다. 적어도 보는 동안은 정신없이 볼 수 있다는 게 <인질>의 영화적 매력. 앞서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메인 악당이 활개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고, 그러다보니 자동차 추격씬을 볼 때는 손에 땀도 나더라고. 확실히 장르적인 맛은 있는 작품. 그러다보니 더 의문이 드는 거지, 이렇게 장르로 돌파할 영화였으면 왜 현실적인 메타 속성을 끌고 들어온 거냐고...

장르적으로 재미있기는 해도 여전히 어색한 순간들이 있다. 난데없이, 그리고 납득 안 가는 섹스. 그게 아주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마구 튀어나오는 사제 총기류와 사제 폭발물. 수갑으로 두 손이 묶여있는 상태임에도 총을 든 두 명의 형사를 다 줘패버리는 악당의 위엄 등등. 보다보면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뒤섞여서 결국에는 이게 뭐하자는 건가 싶기도. 

하여튼 장르적으로 재미있게 본 것은 맞는데, 메타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소 애매하게 느껴지는 작품. 아니, 진짜로 <여배우들>처럼 갔어야지. 자기들끼리 질투하고 샘내고 예능 출연한 걸로 생색내는 그런 영화로 갔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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