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5 14:29

미샤와 늑대들 극장전 (신작)


때는 바야흐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 미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유태인 소녀가 그 부모를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날씨는 춥고, 숲길은 험하고, 곳곳에서 독일군의 총칼이 반짝인다. 발도 부르트고 배도 고팠지만, 그래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여정 중에 놀라운 동료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를 무리의 동료로 받아들이고 아껴준 야생 늑대 무리. 흡사 <정글북>이나 <모노노케 히메>가 떠오르는 엄청난 이야기. 그렇게 살아남은 소녀는 성인이 되고 중년에 이르러 그러한 자신의 마법 같던 과거를 고백해 내놓는다. 근데 이건 누가 봐도 잘 팔릴 만한 이야기잖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만한 줄거리니까.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출판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고진감래 전개지만......


스포와 늑대들!


이후 미샤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저작권과 그 수익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로 책을 출판한 출판사와 그 대표를 고소한다. 근데 그 사실 여부가 어찌되었든, 이는 출판사 입장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세상의 어느 배심원이, 홀로코스트 경험을 가까스로 꺼내놓은 유태인에게 가혹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가혹한 태도 이전에 어찌 감히 그녀의 이야기에 토를 달 수 있냔 말이다. 결국 출판사측은 패소하고, 이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그러나 누가 말했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란 게 있다고. 출판사 대표는 미샤의 이야기에 수상한 점이 있음을 뒤늦게 알아내고 몇몇 전문가들과 함께 진실을 캔다. 그리고 누군가는 또 이렇게도 말했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늘이 무너진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하다 보면 정말 솟아날 구멍이 생기나 보다. 

미샤의 모든 언사들은 결국 다 거짓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녀가 낸 자전적 이야기의 소설, 그녀를 중심으로 주최된 미술 전시, 또 그녀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와 그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했던 TV 토크 쇼들까지. 전세계 모두가 뒷통수를 맞는다. 그저 관심을 끌고 싶었던, 그리고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를 이런 큰 관심으로라도 잊고 싶었던 여자의 전세계 규모 기만극. 그 이야기가 굉장히 건조한 시점으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미샤와 늑대들>이다. 

형식적으로 사람을 홀리는 부분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의 장르가 다큐멘터리라는 것.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묘사고,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게 진실일 것이란 전제를 당연히 깔아두고 그것을 본다. 화면 안에 담긴 모든 인물과 모든 이야기가 다 진짜일 것이라 당연하게 믿고 영화를 보는 것이다. <미샤와 늑대들>은 그 부분에서 사기에 가까운 기만 전술을 펼친다. 상식적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기만극을 펼친 여자가 자기 욕할 게 뻔한 이런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을 하겠냐고. 그런데 미샤는 이 영화에 출연해 격양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으로서는 혹할 수 밖에. '아, 결국은 미샤의 말이 진실이란 전개로 회귀하겠구나. 우린 또 애먼 사람을 욕 보였던 거야!'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미샤는 대역 배우였다. 그녀가 분장실로 돌아가 화장을 지우는 순간 우리들의 실낱 같던 믿음은 모두 다 깨져 버린다. 보는 이의 귀를 순식간에 팔랑귀로 만들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게 만드는 영화적 기술. 냉정하게 말하면 영화조차 우리에게 사기를 친 것이지만, 난 에둘러 대신 변명해주고 싶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주제라고. 고로 영화가 친 그 사기는 스스로의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던 거라고.

왜냐면 우리들부터가 미샤의 이야기에 너무나 혹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인류 최대의 비극 끝자락에서 사람 대신 동물을 믿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 우리는 언제나 그러지 않나. 우리는 언제나 마법과 기적을 바라고 또 기다린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지라도 그걸 어떻게든 포장해 믿고 싶어한다고. <미샤와 늑대들>은 우리들의 그러한 순진함을 잘 저격한 영화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영화를 보는 1시간 30여분 동안 짧은 탄식을 몇 번 내뱉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었나?'하고. 아니, 어쩌면 멍청한 게 아니라 순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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