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5 15:18

숏버스 - 감성행 극장전 (신작)


단편들을 특정 테마로 묶어 극장 상영하기 좋은 포맷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프로젝트 영화. 이전에는 <이별행>이란 부제를 달고 개봉된 이력이 있는 모양이고, 이번 에피소드 이후로도 계속 다음 스텝이 예정되어 있는 프로젝트인가 보다. 이번에 개봉된 <감성행>은 '여행'이라는 테마로 세 편의 단편을 묶은 모양새.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보자면 썩 구미가 당기는 테마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여행도 지금 언감생심인데, 해외 여행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1. <결정적 순간>
첫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은 프랑스의 중부 도시 뚜르다. 프랑스하면 파리나 마르세유 등을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국내 관객들 입장에서, 뚜르라는 비교적 생소한 배경이 갖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러면 뭘하나, 이야기가 재미없는 것을. 영화는 파리에서 사진 모델로 활동하던 주인공이 자신의 친오빠가 죽은 이후 그가 지내던 뚜르의 곳곳을 탐방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주인공과 죽은 친오빠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묘사되어야 할 터. 아니, 가족이고 친오빠인데 뭘 더 중요하게 묘사해야 되냐고? 형제자매나 부모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순례길을 떠나는 게 아니지않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빠가 썼던 방을 찾아 굳이 그 곳 침대에 눕고, 또 오빠가 생전 사귀었을지도 모를 여자를 찾아 거리를 배회한다. 그럼 적어도 주인공과 오빠 사이에 어떤 감정적 교류가 있었는지 정도는 간단하게나마 설명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은 그냥 특유의 감성만 남은 느낌. 근데 그 감성도 재밌는지 잘 모르겠고... 아, 그리고 단편 영화니까 어느 정도 감안해야하는 부분이긴 한데 영화 자체의 문제인지 상영 시스템의 문제인지 보는내내 포커스가 주기적으로 뭉개지는 현상이 있었다. 여기에 음향도 편집이 잘못된 건지 화면이랑 박자가 안 맞고...

2.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사실상 가장 좋은 에피소드. 유럽 여행을 많이 해봤음에도 그 특유의 분위기에 잘 감화되진 못해 여행지로써는 잘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개인적인 요소들을 다 제쳐두고 보면 파리라는 도시의 낭만적 요소를 극대화한 영화로 훌륭하다. 파리의 오후를 걷는 남자와 서울의 편의점에 갇힌 여자. 전화통화를 통해 연결되는 이역만리 두 남녀 사이에 낭만성이 오롯하게 피어오른다. 가변 화면비가 많이 사용된 영화고, 포토로망 기법에도 적극적이며, 중간에는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 흑백 영화를 아예 이야기 전개의 한 극으로 삼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취향을 한껏 훔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들이 견고한 작가주의적 태도로 임했음 역시 엿보이고. 세 편의 단편들 중 기술적으로 가장 퀄리티가 높은 영화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직접 찍었을 풋티지들은 안정적이고, 또 서울에서 전개되는 분량 또한 차분하게 받쳐줌. 이 두번째 에피소드도 망했더라면 감성이고 나발이고 영화 전체가 위험할 뻔했다. 

3.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음악 영화이자 여행 영화. 그런데 둘 다 어렴풋 하기만 하다. 액션 영화가 잘 짜여진 액션의 합과 동선으로, 코미디 영화가 관객들을 한껏 웃게 만드는 것으로 각각 주제의식을 설파해야 한다면 음악 영화와 여행 영화의 그것 역시 명확할 것이다. 음악 영화는 음악으로 주제를 전달해야 하고, 여행 영화는 주인공이 당도한 공간들을 통해 주제를 덧붙여야 한다. 설정 자체는 좋지 않나, 각각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인데. 그러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는 그 둘 모두에 관심없어 보인다. 뮤지션은 예민하고 고달픈 전형적 존재로 스테레오 타입화 되어 있고, 또 두 개의 주제가가 듣기 좋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음악 만드는 과정 역시 지난하며 뻔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일단 이 영화는 주인공이 떠난 그 여행의 공간을 면밀히 탐구하지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이 정확히 어느 도시, 어느 동네에 놀러온 건지 불명확하게 보인다. 결국 한 공간으로 펼쳐지는 게 아니라 바닷가나 카페 등, 요소들로써만 정형화 된다. 게다가 상영 시간은 제일 길어... 심지어 배치는 가장 마지막이고... 이런 리듬으로 전체 묶음을 막 내리면 어떡하냐. 최소한 이 영화가 마지막은 아니었어야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고, 재미없는 에피소드도 있다. 셋 다 좋은 작품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불가능 했다면 배치를 좀 바꾸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셋 다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면 미풍-약풍-강풍의 순서로 조절하는 게 더 나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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