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1 10:36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 2011 대여점 (구작)


올해로 딱 10년이 된 영화인데, 돌아보면 정말로 영타쿠들이 기절초풍 할 만한 라인업이었다는 게 대단하다. 스필버그 연출에 피터 잭슨 제작이라니. 여기에 스티프 모펫과 에드가 라이트, 조 코니시라는 각본 팀. 제이미 벨과 앤디 서키스 양강체제부터 다니엘 크레이그, 사이먼 페그 & 닉 프로스트 콤비까지 그 이름들을 읊는 것 자체로 레드 카펫이 되는 연기자들. 그리고 ILM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웨타 디지털의 퍼포먼스 캡쳐 기술로 마무리. 영화 좀 봤다 하는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의 라인업이었던 영화. 

이처럼 엄청나게 빛나는 이름들을 앞세운 영화임에도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했다는 게 아쉽다.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빛나는 이름들을 앞세웠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의 존재가 더 아쉬워진다.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자니 실사의 박력감이 안 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실사 이미지로만 가자니 불가능한 액션들의 연속을 담아내기가 어렵고. 현재 <틴틴>이 가진 비주얼은 그러한 장고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버전 역시 어딘가 어색한 게 사실. 개인적으로 불쾌한 골짜기까지 경험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이미지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진 못한 것 같단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퍼포먼스 캡쳐 또는 이모션 캡쳐. 전자는 행동을 담아낸단 뜻이고 후자는 감정까지 담아냈단 뜻이렷다. 허나 <틴틴>에서는 그 둘 중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엄청난 기술력을 통해 만들어진 액션과 코미디들은 대단하다. 그렇지만 틴틴 안에 제이미 벨이, 해덕 선장 안에는 앤디 서키스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각 캐릭터의 성우들로만 느껴질 뿐, 목소리 외에 배우로서 그들이 얼마나 묻어나오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특히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 콤비는 극중에서도 쌍둥이 형제 콤비를 맡았는데, 그 때문인지 그 둘을 더욱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뭐, 쌍둥이 캐릭터니까 야바위하듯 애초부터 그게 의도였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또, 어드벤처 영화로써의 호흡도 문제다. 2시간에 달하는 런닝타임,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20분을 남겨두고도 정리는 커녕 액션 늘어놓기 바쁘다. 하긴, 이건 전체 시리즈 구성 계획의 문제일 것이다. 원래의 계획대로였다면 이 영화 이후 피터 잭슨이 연출하고 스필버그가 제작하는 속편이 바로 나왔어야 하니까. 그러나 1편 개봉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속편 제작은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영화의 호흡이 더더욱 괴상하게 느껴진다. 기승전결 구조로 가면 전까지는 그래도 잘 해놨는데, 결부터 뭔가 김빠지는 느낌. 

이토록 아쉬운 부분들이 많건만, 그래도 <틴틴>은 미워할 수 없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엔 기가막힌 연출이 있고, 또 그걸 보좌하고 조력하는 카메라가 존재한다. 스필버그의 영원한 짝꿍인 야누스 카민스키가 컨설턴트로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이 영화의 유려한 촬영에 믿음을 더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이 영화에는 애니메이션 만이 할 수 있는 카메라 움직임들이 존재한다. 실사 영화라면 불가능했을 다이나믹함. 영화 초반부 소매치기의 화려한 손기술을 담아내는 순간이나 유니콘호의 모형에서 비밀 메시지가 빠져 흘러나왔을 때, 과거 해덕 선장과 레드 라캄의 결투,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후반부 이국적인 풍경에서 펼쳐지는 3분여의 롱테이크. 스필버그는 자기 자신이 어드벤처 영화의 원류고 또 아직까지 일류라는 것을 뒤늦게 증명하기라도 할 셈인듯 관객들을 마구 몰아붙인다. 

<틴틴>에는 정말로 고전적인 어드벤처 영화로써의 풍미가 존재한다. 해적과 잃어버린 보물들, 선원들에게 배신당한 선장의 복수, 조상으로부터 대를 이은 대결, 이국적인 풍광, 교차되는 바다와 사막의 이미지, 원점회귀 등등. 10년이 지난 지금와서야 아깝지만, 정말로 이 영화의 속편이 만들어져 못해도 2부작의 형태를 통해 리듬감의 아쉬움마저 덜 수 있으면 더 좋았을 거다. 활개치는 카메라와 넘실대는 모험 정신. 그리고 이 모험 정신은 비단 틴틴과 해덕 선장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예순다섯의 나이에 이모션 캡쳐라는 신기술을 경험한 우리들의 노장. 이후 그는 처음 맛본 그 신기술을 갈고 또 닦아 <레디 플레이어 원>까지 만들게 된다. 언제나 모험 정신으로 가득찬 영화 소년 스필버그. 언제나 젊었을 그의 모습을, <틴틴>에서 또 보았다. 

뱀발 - 원작에서부터 정립된 틴틴과 해덕 선장의 이미지에는 본인 스스로를 투영하기가 어려워서였을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악당 사카린은 암만 봐도 스필버그 닮은 꼴이다. 

덧글

  • 잠본이 2021/09/27 18:51 # 답글

    극장에서 보고 10년째 속편을 기다리고 있는 제가 왔습니다(오열)
    짜임새는 좀 으잉? 스럽지만 원작에서 진짜 한두컷으로 지나가는 장면을 유려하게 잘 풀어낸지라
  • CINEKOON 2021/10/06 16:00 #

    아니... 이 정도로 해놨는데 2편 안 만드는 건 그냥 직무유기 아니냐고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