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 영화를 잘 못보는 겁쟁이로서 1편은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나는 그게 호러 보다는 스릴러로 느껴졌었거든. 1편의 그 주인공 도둑놈들한테 이입 하자면 당연히 호러였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난 그 노인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었다. 그 노인도 똑같이 미친놈인 건 매한가지지만, 어쨌거나 도둑놈들이 그 노인 집에 지들 멋대로 침입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1편을 극장에서 볼 적에, 노인이 도둑들을 하나하나 때려눕히는 순간들마다 공포심 보다는 통쾌함을 더 느꼈다. 물론 겁먹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 최면을 걸기 위해 그런 것도 좀 있었고.
맨 인 더 스포일러!
다시 말해, 누구의 관점을 통해 영화를 볼 것인지에 따라 영화적 쾌감이 달라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속편 역시 전편의 그 유지를 받든다. 초반에서 중반까지만 보면, 영화는 영락없는 <테이큰>류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딸을 지켜야하는 노인이 있고, 또 그들을 위협하는 막장 범죄자 악당들이 있고. 전편을 본 사람으로서는 여기서 일단 정신이 아득해진다. 1편 볼 적에 좀 편들어줬기로서니, 2편에선 아예 그 노인을 선역으로 뒤바꾸겠다고? 이게 제정신인가? 호러 스릴러에서 갑자기 액션 스릴러로 바뀌겠는데? 실제로 영화가 그렇게 진행되고, 때문에 관객이 된 입장에서는 노인을 응원하게 된다. 소녀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노인을 찾게 되고, 또 노인이 악당들을 줘팰 때마다 익숙한 쾌감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불현듯 찾아온 꺾기. 알고보니 그 노인이 소녀의 실제 친아버지가 아니라네? 오히려 악당들이 소녀를 구출하러 온거래. 뭐야, 심지어 그 범죄자들 두목이 소녀의 친아버지였어...?
여기서부터 갑자기 이야기의 관점이 정반대로 꺾이기 시작한다. 노인의 편에 서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갑자기 노인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호되게 당할 때마다 통쾌함이 느껴졌던 범죄자 악당들이, 알고보면 착한 사람일지도? 오히려 좋은 사람들일지도? 그런 마음에 노인이 어둠 속으로 숨어들 때마다 안심 대신 불안이 감돈다. 그리고 끝내 친아버지로 밝혀진 범죄자 두목을 따라 소녀가 구출 아닌 구출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뱉게 되지. "저 노인네 역시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어."
그런데 씨발, 여기서 한 번 더 꺾기들어갑니다잉. 휠체어 탄 엄마까지 등장시켜 안심 시키나 했더니 사실 소녀의 친부모들이 더 불한당이었던 것. 딸을 죽여 그 심장을 빼앗기 위해 벌인 일들이었던 것. 여기서 정신이 한 번 더 아득해진다. 그래... 미친놈이긴 했지만 차라리 그 노인네가 나았어... 적어도 그 노인네는 얠 거둬주고 먹여주고 했던 거잖아...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최근 본 영화들 중 사람 마음을 이렇게 가지고 노는 영화가 있었는지 싶다. 노인은 이 때부터 다시, 관객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구세주가 되기 시작한다. 눈 비비고 다시 봐도 존나 기묘한 꺾기다.
1편에 비해 연출력의 센스나 전체적인 만듦새는 살짝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번 속편이 흥미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했던 관점 변화 때문이다.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보는 이를 팔랑귀로 만드는 영화. 어느 장단에 춤춰야할지 판단이 잘 안 서는 영화. 그리고 끝내는 최악과 차악 모두 다 골로 보내버림으로써 소녀를 해방시키는 영화. 영화적 재미는 그럭저럭인데, 이 특이한 태도가 존나 인상적이고 맘에 들었다.
뱀발 - 공포 영화로써 빵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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