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시작한 그리스 여행. 그러나 전설과 신화의 나라가 주는 설레임도 잠시, 남자는 잠깐의 졸음 운전으로 여자를 잃는다. 이역만리 어색한 타국에서 벌어진 비극. 말도 안 통하는 병원과 경찰서에서 사건을 수습해야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웬 여자와 경찰서장이 대뜸 총을 쏘아가며 남자를 쫓는다. 말도, 길도 모르는 그리스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추격극. 대관절 남자는 왜 쫓기는 것인가.
스포일러가 뭉게뭉게.
특유의 현실감각으로 진행되는 영화라, 운명은 전개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건들은 어쩌다 일어나고, 또 우연히 연결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한 여행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니 그 여자의 생사가 이 전체 미스터리와 뭔가 연관이 있겠지? 어림도 없지, 영화는 초반에 그 여자를 죽여 버린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도 아니다. 그녀의 사망은 그저 주인공이 밤늦게까지 운전하다가 졸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의 본질, 좌파 의원의 조카 납치 사건 현장 역시 주인공이 목격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히다. 우연의 연속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에서 이 주인공이라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나아가는 것 뿐.
전체 상황과 그 맥락을 모르고 헤쳐나갈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절박함이 잘 와닿는다. 멍청한 짓거리를 해 관객들 고구마 먹이지도 않고, 누가 저 상황에 처해도 납득갈 만한 방향으로 남자가 달려간다. 그리고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서 느끼는 막연함과 고립감이 더해지니 긴장감은 자연스레 샘솟고. 아, 상대가 경찰이고 나는 외국인이니 시민들 눈에는 내가 범죄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살려달라 소리를 질러대도 그들이 나를 도와줄 확률은 그리 높지 않겠구나. 이런 자연스런 사고방식의 흐름을 통해 얻게 되는 긴장감이 <베킷>의 중추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 제아무리 우연에 기댄 영화라 했을지라도 전체 미스터리는 너무 얕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드 홀브룩의 캐스팅이 너무 아쉽다. 그는 좋은 배우지만, 우리는 이미 그의 수많은 악역 연기를 보아오지 않았던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주인공 뒷통수를 후려갈겨야 했던 반전있는 인물로써는 캐스팅이 뭔가 잘못된 듯. 주인공이 미국 대사관에 무사히 들어왔으면 일단 안심 부터 되야하는 건데, 보이드 홀브룩의 얼굴을 한 담당관이 무턱대고 자기부터 믿으라 말하니 내 어째 의심을 안 할쏘냐.
그래도 가볍고 콤팩트한 스릴러로써 일정 부분 이상의 재미는 있었다. 마지막에 그 경찰서장 줘패는 거 존나 통쾌했음. 솔직히 더 줘팼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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