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3 16:52

D.P._SE01 연속극 대잔치


군대라는 스킨을 씌우긴 했지만 엄연한 수사물이고 추적극이며, 무엇보다 버디 무비로써 사력을 다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군대라는 요소가 스킨 정도의 취급을 받을 정도로 대충이냐? 그건 또 아님. 대한민국 군대의 병폐를 그대로 전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안에서 점점 박살나는 우리네 청춘들의 모습 역시 놓치지 않는다. 장르적 재미로도, 메시지로도 쉽게 멍들지 않은 특 A급상품. 그래서 또 고마워진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게 대체 어느 방송사에서 먹힐 만한 기획이고 각본이었을까. 거지발싸개 같은 퀄리티의 오리지널 영화들만 우후죽순 쏟아내다가 또 이거 한 편에 넷플릭스 찬양하고 있는 내 모습도 참 가관이다. 


스포일러가 있지 말입니다?


원작 웹툰이 있다 들었지만 그것까진 보지 못했으니 각설하고. 기획을 정말 잘 짰다. OTT 내에서 할 수 있는 6부작 미니 시리즈로써 규모나 구성이 참으로 알맞다. 전체 시즌을 꿰뚫는 사건의 차원이 하나 있으면서도, 각 에피소드에서는 또 개별적으로 산개. 사로 별로 다양한 코스를 통과해야하는 각개전투 훈련을 진행하는 동시에 하나의 큰 종착역으로 이어지는 행군까지 해내는 느낌.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케 만드는 건 결국 캐릭터라는 진실. 

기본적으로 버디 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들의 매력도가 완성도에 큰 기여를 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그걸 우리들의 관찰자 안준호 이병과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의 한호열 상병이 잘 해냈다. 기초 훈련은 마쳤다지만 어쨌거나 이병으로서 군 생활의 초보자일 수 밖에 없는 안준호를 통해서는 시청자들을 대변해주고, 여기에 한호열이 특유의 말투와 대사로 구렁이 담 넘듯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 투성이인 대한민국 군대를 특유의 시니컬하고 야멸찬 태도로 관찰하는 안준호의 눈빛이 대단하고 여기에 기름칠을 해주며 이야기가 너무 어둡게만 가지 않도록 미세조정해주는 한호열의 대꾸가 알맞다. 사실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크게 한 번 데인적이 있어 정해인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차라리 이렇게 터프한 역할로 가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 그리고 구교환은 말해 무엇하겠나. 독립 영화 판에서 부터 유지하고 있는 특유의 주절거림으로 여전한 끼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호랑이 열정 한호열 없었으면 이 드라마 이렇게까지 재밌진 않았을 거임.

다만 추적극이자 수사물로써는 다소 아쉽다. 많이 아쉬운 건 아니고 매우 조금. 다소. 요만큼. 대표적인 게 두번째 에피소드. 지하철 역사 위주로 목격되는 탈영병의 거취에 대해 논하면서 시청자 보다 그 추리가 한 발 늦다. 찜질방 컴퓨터 앞에서 안준호가 탈영병의 행적을 차례차례 언급할 때 시청자들은 이미 다 답을 얻거든. 근데 수사물의 주인공이라는 자들이 그것보다 이상하게 한 템포가 늦음. 그 점은 분명 아쉽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님. 안준호와 한호열이 무슨 형사도 아니고, 어쨌거나 둘 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아닌가. 한호열이 짬밥 좀 먹었다 해도 하여튼 전문가까지는 아니니 이 정도의 오락가락은 오히려 현실적인 묘사일 것이다. 그래도 장르적으로서는 좀 아쉬운 부분. 다시 말하지만 매우 조금. 다소. 요만큼.

이어서 3부도 좀 처지는 인상이 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팜므파탈 캐릭터를 리뉴얼해 가져오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는데, 이야기가 갑자기 너무 탈 군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 물론 덕분에 해당 에피소드가 전체 시즌 내에서 조금 다른 맛을 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전체의 통일성 측면에서는 너무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는 거지. 

하지만 여기에 석봉의 캐릭터가 끼어들며 드라마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20대 초반, 정말이지 어린 나이인데. 그 어린 나이에 각종 부조리들을 겪어가며 점차 파편화 되는 한 인간의 내면이 너무도 생생해서 너무나 잔인하다. 군생활 내내 왜 그토록 가혹했냐는 피해자 석봉의 물음에 가해자 장수의 대답은 너무 와닿는 것이었다. "그래도 될 줄 알았다"는 말. 도덕적 판단을 제외하고, 그냥 그것이 군대라는 사회의 문화이기 때문에. 전통이기 때문에. 대물림이기 때문에. 아니, 그런 줄 알았기 때문에. 위에서 하는 걸 그대로 보고 배워 아래에 행한 사람들의 비극. 그러나 언제나 말했듯, 모든 순간엔 선택의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에둘러 장수 또한 피해자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부조리의 사슬을 끊어내는 자들이 정말로 있기 마련이거든. 나도 20대 초반 군대에서 그런 이를 보았고. 장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와서 남탓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개개인은. 

하지만 그런 동시에, 군대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지켜봐야할 책무를 진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남탓을 해야한다. 시스템을 탓해야하고, 그 시스템을 그렇게 만든 자들을 탓해야만 한다. 너도 나도 다 겪어봐서 알지만, 군대는 외부의 가혹한 비판과 잣대가 있다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작은 사회다. 눈치를 볼 때도 그 정도인데, 하물며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 속에서는 더 하겠지. 개개인의 탓과 더불어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에 대해 호통치는 일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부대 내 화장실 변기 칸에서, 연병장의 한 쪽 구석에서, 일과가 끝난 후 밤의 분리수거장에서, 생활관 침상 위 침낭 속에서 지금도 조용히 눈물 흘리고 있을 우리들의 석봉이들이 또다시 부서질 것이다. 6.25 때 쓰던 수통도 바꾸지 못하는 게 군대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나. 안 되고 실패할 게 뻔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안의 사람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야지 않겠나. 

아들이 있는 것도, 자식을 낳아본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석봉이의 마지막 말에 가슴이 저릴 수 밖에 없었다. 다 큰 어른이, 왜 법적으로도 성인인 남자가 눈물 흘리며 엄마를 찾는 데에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건 석봉이의 그런 모습이 나였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나의 군 생활 시절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 드라마 속의 묘사들과 비슷한 수준의 가혹행위를 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난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군 생활이 무조건 가장 힘들다는 것.' 고로 남의 군 생활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굳이 그걸 이겨먹으려 하는 태도는 필요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건 자멸의 길인 것이다. 상대의 수고로움과 고통을 인지하고 또 공감하는 것. 그렇게 연대를 키워나가 체제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 여군 대상 성군기 위반, 가혹행위에 의한 후임의 자살 등 여러 군대 문제들이 TV 뉴스 화면을 메우고 있는 이 때에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군대 내 문제들에도 관심을 갖고 잡아줘야지. 지하철 역과 버스 터미널에서 마주치는 군인들을 마음속으로 나마 잡아줘야지. 돌이킬 수는 없어도 사람을 잡아주어야 하는 시대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