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4 18:47

스네이크 아이즈 - 지.아이.조 극장전 (신작)


지난 두 편의 시리즈에서 그나마 발군이었던 것은 스네이크 아이즈와 스톰 셰도우, 이 두 캐릭터였고 또 그 사이의 관계였다. 그러니까 그 둘을 중심으로한 스핀오프이자 소프트 리부트 역할을 해줄 솔로 영화, 그것도 두 캐릭터의 오리진 스토리를 다루겠다는 영화사와 제작진의 태도는 이해가 간다. 물론 굳이 이걸 새롭게 만들 정도로 기존의 그 두 영화가 좋았느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수퍼히어로 장르 중심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구축이 블록버스터 영화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변변한 수퍼히어로 판권이 없는 파라마운트로써는 새롭게 리런칭 하기에 이 정도로 좋은 IP가 또 없었을 거다. 훈련받은 군인과 닌자들이 활개치는 영화이긴 해도, 어쨌거나 그 본질은 수퍼히어로 장르의 그것이잖아?


스포일러 아이즈!


수퍼히어로 장르 아니, 모든 장르의 영화를 통틀어 아니, 그냥 모든 종류와 모든 매체를 포함해 '이야기'라는 포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개연성이나 사실성 등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중 가장 앞서야 하는 것들 중 하나는 단언컨대 '캐릭터'일 것이다. 관객이자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서, 그 뒤를 흔쾌히 따라갈 만큼 주인공이 매력적인가-는 성공한 이야기의 분명한 척도지. 게다가 이 영화는 원작 속의 특정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 했는지를 그리는 오리진 스토리 아닌가. 그럼 일단 다른 건 다 떠나서 망하더라도 주인공 캐릭터 하나만은 제대로 건져내야하는 기획인 거지. 상술했듯 애초에 기존 시리즈에서 건질 건 스네이크 아이즈와 스톰 셰도우 이 두 캐릭터 뿐이기도 했고. 

근데 여기서 처참히 실패한다. 스네이크 아이즈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일단 재미가 없는 인물이고, 그 탄생 설화 조차도 지나칠 정도로 뻔하게 묘사된다. 애초 스네이크 아이즈라는 캐릭터의 본질이 무엇인가? 과묵한데, 실력은 대단해. 비극적인 과거를 극복하고자, 현재에서 노력해. 그리고 그 요소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간지. 딱 그거 아닌가? 그러나 <스네이크 아이즈>는 그걸 다 못해낸다. 극단적 원작주의자도 아니고 이 IP의 원작에 대해서 별다른 애정도 없지만, 그래도 <스네이크 아이즈>의 스네이크 아이즈는 말이 너무 많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통틀어 아예 대사가 하나도 없는 인물이었잖아. 그런데 이 영화의 스네이크 아이즈에게는 그러한 속성이 전무. 물론 입 꾹 닫고 사는 주인공으로 영화 한 편 만든다는 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란 걸 잘 안다. 어떻게든 대사는 쥐어줘야 했겠지. 그래도 이게 오리진 스토리라면, 진정한 스네이크 아이즈로 각성한 영화의 후반과 결말부에서는 대사 다 빼앗고 또 그렇게 된 이유 역시도 만들어놨어야지. 원작에서의 가장 큰 특징을 날려먹었는데 이걸 실사화라고 할 수 있나?

웃긴 건 실력이 뛰어난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길거리 싸움꾼으로서 그가 첫 등장 하는데 절박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싸움에서 너무 많이 얻어맞는다. 이후 일본에서 맞이한 세 가지 시련들에서도 그닥 화끈한 모습 못 보여주고. 그러다보니 이 근본 없는 싸움꾼을 밑도 끝도 없이 믿어주기만 하는 스톰 셰도우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적이 된 형제 컨셉 치고는 둘이 그닥 친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내용만 보면 딱 <도니 브래스코> 플롯인데, 거기 나오는 조니 뎁은 상대인 알 파치노와 엄청난 우정을 쌓잖아. 그러니까 주인공의 죄책감과 후반부 선택이 이해되는 거고...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게 다 안 됐다. 

<도니 브래스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터져 나온다. 오리엔탈리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현대 시점의 일본이 닌자 집단의 도움을 받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존나 웃긴 설정이기는 하지만 애초 원작부터가 그런 물건이니 쿨하게 인정. 21세기임에도 총 대신 일본도 들고 옥상 위를 넘나들며 벌이는 싸움? 이것도 장르가 원래 이 모양이었으니 그냥 인정. 할리우드에서 현대 일본 그리는데 이 모양 이 꼴이었던 게 하루 이틀 일이었던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다 이해할 수 있단 말이다. 넓은 아량으로.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이해 못하겠다. 대체 왜 주인공을 비호감으로 만든 것일까. 

이 주인공이란 놈이 어떤 놈이냐. 자기 아버지 죽인 놈들 찾아 복수하겠답시고 야쿠자 두목과 계약한다.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도와준 의형제를 따라 그의 집안과 조직 내부로 들어감. 당연히 조직 내부의 사람들은 그를 믿어주지 않고 경계하지만, 그 때마다 이 의형제라는 양반이 나와 그의 신원을 보증해준다. 심지어 자신의 집을 네 집처럼 여기길 바란다며 잘 챙겨준다고! 살려줘, 재워줘, 먹여줘, 심지어 칼도 주고 나중에는 피도 나눔. 그런데 이 주인공이 어떡하냐고? 이미 계약한 야쿠자 두목의 밀정 짓을 계속한다! 나중에는 의형제의 목숨과도 같은 보물마저 훔쳐 달아나고... 그걸 또 야쿠자 두목에게 넘기고... 그래서 의형제도 빡쳐서 주인공 죽이려 하는데 또 주인공의 뱀같은 혀에 그를 살려주고... 하여튼 잠시 동맹 맺어서 그 야쿠자 두목과 싸우지만... 의형제는 순간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일족과 조직으로부터 파문 당하고... 아니, 저기요. 지금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의형제가 우리들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그 의형제를 등쳐먹고 끝엔 파문까지 당하게 만든 작자가 우리들의 주인공이라는 거죠...? 이런 육실헐.

영화 보는내내 존나 짜증만 난다. 사고뭉치 비호감이 주인공인 수퍼닌자 영화가 있다? 응, 바로 여기. 기존 시리즈에서도 얼굴 하나 안 나오는 레이 파크의 스네이크 아이즈보다는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던 이병헌의 스톰 셰도우에 더 매료 되었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스톰 셰도우가 엄청 매력적이란 소리는 아니지만, 주인공이라고 서 있는 작자가 이 모양 이 꼴인지라... 그외 액션도 다 할 말이 없다. 나 적어도 이 원작과 기존 시리즈는 어느정도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시리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판타지의 영역으로 점프해 괴수 급의 아나콘다 세 마리가 등장하는 것도 보면서 멍했고, 후반부 유치한 대사들과 조악한 액션 씬들도 다 그닥이었던지라...

아, 웃겼던 것. 야쿠자와 닌자 집단이 설켜 자동차 도로 위에서 혈전을 벌이는데, 마침 지나가던 차량 운반차가 싸움터로 변하는 장면이 있다. 차량 운반차 위에서 총 쏘고 칼 쓰고 사람 죽어나가고 실려있던 자동차들은 다 박살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멘탈인지 그 차량 운반차 운전자는 절대 멈추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딱 배틀 그라운드 역할 해주러 온 것일 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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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케이트 2021-09-18 16:11:17 #

    ... 글을 따로 쓰게 되어 그렇지, &lt;케이트&gt;는 &lt;스네이크 아이즈&gt;와 &lt;건파우더 밀크셰이크&gt;에 이어 연속으로 관람한 영화였다. 그런데 정말로 기묘하게도, '&lt;케이트&gt; = &lt;스네이크 아이즈 ... more

덧글

  • SAGA 2021/09/19 10:33 # 답글

    어느날 갑자기 본 예고편을 보고, 응 이건 뭐지? 했었는데... 이병헌과 레이 파크 둘 다 안 나온다는 소리에 바로 보는 걸 포기했지요...
  • CINEKOON 2021/09/22 16:08 #

    포기하셔도 상관없는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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