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만한 중소 기업 급 규모로 보이는 살인 청부 회사. 그곳의 킬러로 살고 있는 인간흉기 급 주인공. 그러던 그녀에게, 어린 날의 자신을 떠오르게 만드는 한 소녀가 나타나고 이후 그녀는 회사와 범죄 조직들에 의해 쫓기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뒷부분 전개를 모조리 다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레옹>이 이 장르를 다시금 개국시킨 이래, <테이큰>이 있었고 <지옥에서 온 전언>이 있었으며, <더 포리너>와 심하게는 <마크맨>까지 있었다. 한국에도 <아저씨>와 <악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존재했으며 이걸 수퍼히어로 장르로 풀면 <로건>, 호러 장르로 풀면 <맨 인 더 다크 2>가 되는 거지. 그리고 극중 등장하는 소년 혹은 소녀의 아이 캐릭터를 강아지로 치환해 풀어버린 <존 윅>도 있었고... 강철중 말마따나, 이제 이런 영화들 불러모으면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바퀴쯤은 거뜬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승부처는 여성 영화로써의 가치에 있다. 액션 영화 주인공 자리를 여성이 꿰차버렸다는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이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액션 영화들이 한가득이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그런 태도로 이 영화를 보려 했다는 게 아니라, 애초 영화 부터가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도록 설계 되었다는 소리다. 여성 주인공에 한 소녀, 그리고 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 캐릭터의 등장. 여기에 이들을 도와주는 유사자매 관계의 세 여자까지. 주인공 파티 손에 무자비하게 썰려나가는 악당 잔바리들과 폴 지아마티라는 명배우의 캐릭터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 모든 주요인물들은 다 여성이다. 포스터만 봐도 딱 그렇지 않나. 심지어 폴 지아마티는 포스터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그렇담 당연히 여성 영화로써 뭔가 내세울 만한 가치가 있나 보구나 싶어지는 거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 포스터에 남자들만 나와 있으면 의아함과 함께 예상치 못한 전개가 존재할 거라는 기대감이 같이 생기잖아. 뭐, 그런 식의 기대를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에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
하지만 그게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친모녀, 유사모녀, 유사자매 관계에서 오는 메시지와 재미는 없지 않다. 친아들을 잃은 범죄 조직 보스의 남성 두목이 남성 악당들을 잔뜩 풀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하려는 반면, 그에 대응해 여성들은 서로를 결속하고 보호해줌으로써 맞선다는 구도 자체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카렌 길런의 액션 연기도 어느정도는 봐줄만 하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액션의 규모는 소극이고, 나름 큰 세계관을 설정해두었는데도 그걸 요긴하게 잘 써먹질 못한다.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냥 그런 묘사가 없다. 정장이나 검은 가죽 자켓 같은 클리셰적 의상 대신 화려한 볼링 점퍼를 입고 사람들 패죽이는 모습이 키치해 발랄하기는 한데, 그것 제외하면 이 영화만의 개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액션 외에 딱 하나만큼은 더 해냈어야 했던 것, 바로 주인공과 소녀의 관계. 이것 역시 뻔하긴 해도 이 둘이 꽤 흥미로운 관계거든. 주인공은 그 소녀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러니까 소녀에게는 부모의 원수인 셈인데, 웃긴 게 또 소녀를 구원하고 그녀와 유사가족을 이루게 된 것은 그 주인공이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아니겠는가. 그럼 이건 제대로 해냈어야지...
존나 웃긴 게, 그냥 쿨하게 용서된다. 언니가 우리 아빠를 죽였건 말건, 우리 그냥 같이 살자-쯤의 뉘앙스가 된다. 근데 얘는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쳐. 주인공의 태도가 더 가관. 얘는 자기만 바라보는 어린애의 친아빠를 직접 죽여놓고도 그 소녀에게 "사실 이 모든 건 그 회사 탓이었어"식의 스탠스를 취한다. ......? 진짜? 이러기야? 아~ 너는 그저 명령을 들었을 뿐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네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명령을 내린 상부를 족쳐야 한다는 거지? 이토록 반성없는 주인공을 봤나...
친딸과 유사손녀를 동시에 가진 어머니이자 할머니로서, 레나 헤디가 연기한 스칼렛의 선택이 매우 아쉽다. 자신의 직업 때문에 딸과의 관계를 손해봤으니, 차라리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악당 두목에게도 설득의 기술을 사용했으면 영화가 더 성숙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외, 양자경은 여전히 존나 멋지지만 딱 액션용 쇼윈도 마네킹처럼 느껴질 뿐이고 안젤라 바셋이나 칼라 구기노 역시 그녀의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들에 비하면 아쉽긴 마찬가지다.
여성 캐릭터들 위주로 편성해 모성과 자매애를 남발한 건 좋다. 그러나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가 없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결말 속 태도가 너무 밥맛이다. 액션을 존나 끝장나게 하든가, 아니면 메시지를 부드럽게 풀든가... 그나마 손 마비 된 상태로 싸우는 주인공 모습만은 건졌음. 그거 빼면 이 영화에 뭐가 남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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