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16:11

케이트 극장전 (신작)


글을 따로 쓰게 되어 그렇지, <케이트>는 <스네이크 아이즈><건파우더 밀크셰이크>에 이어 연속으로 관람한 영화였다. 그런데 정말로 기묘하게도, '<케이트> = <스네이크 아이즈> +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처럼 보이더라.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삼아 그 도시의 골목골목을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점은 <스네이크 아이즈>와 비슷해 보이고, 여성 킬러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끔 하는 한 소녀를 만나 그를 지키기 위해 속해있던 조직으로부터 탈주한다는 전개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유사. 장르의 유사성이라고 그냥 퉁치기에는 너무나도 그 타이밍이 절묘했음. 


스포일러를 쏴댑니다. 


고로 이 영화에 내리고 싶은 나의 자비 또한 <스네이크 아이즈>,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같다.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거? 서양 사람들 기준의 오리엔탈리즘 + 사이버펑크 마구 섞인 게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이해해줄 수 있다. 서양 관객들이 이런 거 진짜로 좋아하는 게 사실이기는 할 테니까. 그리고 그만큼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가 영화사에 남긴 이미지가 강렬하니까. 오케이, 쿨하게 넘어갈 수 있음. 그리고 한 소녀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게 되는 킬러 이야기? 이것 역시 존나 뻔하다 못해 닳고 닳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 만들면 끝장나게 재밌어질 가능성이 큰 전개인 것도 사실이니 이 또한 인정. <존 윅> 1편이 만들어질 때도 이미 이러한 전개는 뻔한 클리셰였으니. 한마디로 넓은 아량을 갖춰 웬만한 건 다 이해해줄 수 있었다는 소리다. 

이를 토대로 <케이트>를 딱 한 줄의 평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지켜낸 약속도, 놀라운 의외성도 없는 영화라고. 모든 영화, 특히 그게 장르 영화라면 특히 더더욱, 그들은 언제나 관객들과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공포 장르라면 무섭게 해주겠다고, 코미디 장르라면 웃게 해주겠다고, SF 장르나 판타지 장르라면 장대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하며 한 가지씩은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 전개와 결말이 뻔하다 하더라도, 그 한 가지 약속만 온전히 지켜냈다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테이큰>과 <존 윅>은 그러한 약속들을 끝까지 지켜낸 영화들이었고. 허나 <케이트>는 어떠한가? 액션 장르로써 관객들에게 약속해낸 쾌감을 제대로 제공해내는가? 그러지 못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의 표정과 몸짓은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그 소임을 다해내지만, <케이트>는 스스로만의 액션 특이성이 전혀 없다. 대인격투는 뭉툭하고 카체이스는 날림이다. 아예 세트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도쿄의 뒷골목은 그 자체로 스테레오 타입처럼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감정과 약점이 너무 납작하게 느껴진다. 

액션도 평범한데, 아니나 다를까 보는 이의 예상을 뒤엎는 신선함과 반전 역시 전무하다. 케이트의 직속 상관으로 우디 헤럴슨의 얼굴이 제시되는 순간, 우리는 안다. 아, 저 양반이 케이트 뒷통수를 치겠구나. 케이트와 소녀가 버디 무비 아닌 버디 무비를 찍으며 서로의 존재를 애틋하게 여기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또 안다. 아, 곧 이 둘의 갈등과 분열을 위해 케이트가 소녀의 아버지를 죽였음이 밝혀지겠구나. 아니, 그보다 잠깐만. 이것도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랑 판박이잖아? 

하여튼 영화는 별 수를 쓰지 못한다. 평범한 패를 당연한 순서로 들고 있었으면서 대체 왜 그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다 해낼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어려웠으면 적어도 하나는 해내라고. 뻔하더라도 존나 재밌게 만들든가, 아니면 좀 덜 재밌더라도 실험적으로 신선하게 만들든가. 적어도 액션과 이야기 중 하나는 선택 했어야지. 결국, <케이트> 역시 전형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끝나고야 말았다. 존재감이 희미해 벌써 다 잊어버린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그나마 좋았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의 헌트리스였는데, <케이트>는 그걸 그대로 이어다가 가능성을 틔워내기는 커녕 그냥 죽여버렸다. 넷플릭스 선구안 오진다, 진짜. 

핑백

  • DID U MISS ME ? : 미나마타 2021-10-10 22:46:06 #

    ... 어쨌거나 조니 뎁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군림한 사람이었으니까.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나다 히로유키, &lt;곡성&gt;을 필두로 최근 &lt;케이트&gt;까지 발판삼아 여러 할리우드 영화들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한 쿠니무라 준. 그리고 조니 뎁과 꽤 오랜만에 해적 케미를 보여주는 빌 나이까지. 캐스팅 ... more

덧글

  • nenga 2021/09/25 00:10 # 답글

    굳이 해독 못할 방사능 물질을 쓸 필요가 라는 의문도 들고
    안그래도 뻔한 영화가 더 뻔해지는 효과만
    마지막에 혼자 다 쓸어 버리던가 아니면 두목하고 둘이서 무쌍을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배우들도 열심히하고 연출이나 각본도 아주 엉망은 아닌데
    뭔가 한방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CINEKOON 2021/10/06 15:58 #

    어차피 전개를 속보이게 갈 거면 그냥 액션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선택을 하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단 생각이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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