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2 16:30

어시스턴트 극장전 (신작)


'어시스턴트'라는 제목 하나로 정리되는 측면이 있다. 어시스턴트. 사전적 의미로는 조수, 보조원 정도. 그 어시스턴트라는 단어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직업 세계에 존재한다. 이공계에도, 예체능계에도 어시스턴트는 존재한다. 사무실에도, 작업현장에도 어시스턴트는 존재한다. 어느 곳, 어느 직업 세계에나 존재하는 조수 또는 보조원의 존재. 우리가 곱씹어봐야할 것은 바로 이거다. 그게 어떤 분야든, 태어나 자라면서 조수 또는 보조원을 최종 단계로 꿈꾸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의 이상 속에서 종착지가 아닌 기착지로써만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이상이야 어찌되었든,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들의 현실 속 직업 세계에서는, 조수 또는 보조원이 종종 누군가의 도착지로 착각되곤 하니까. 

영화는 아침 아니, 새벽녘에 이른 출근을 하는 제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우버를 타고 뉴욕 외곽에서 맨하튼으로 들어가는 길. 이미 여러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의 배경으로 간택되고 또 소비 되어 지구 반대편의 관객 입장에서도 눈에 익을대로 익은 뉴욕의 풍경이지만, 그 야경을 보여줌에도 이 영화엔 낭만적인 터치가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대도시 특유의 피로함과 산만함 뿐. 프레임을 가득채운 맨하튼 내부 시내 건물들의 이미지가 속속 나열되고, 여기에 텅 빈 회사 사무실의 불을 홀로 켜는 제인의 모습이 이어진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오프닝에서 부터 관객들은 피곤해진다. 

말이 어시스턴트고 좋게 포장해 비서 정도인 거지, 사실상 제인이 하는 일은 잡무다. 그녀는 사무실 청소를 하고, 탕비실의 설거지를 하며, 종종 사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달부로, 남의 점심을 배달하는 배달부로, 심지어는 사무실을 방문한 누군가의 어린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의 역할까지도 맡는다. 도제 시스템이 옛말이 된 지금이라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일을 배울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할 판국에, 정작 맡겨진 것은 시시하되 피곤한 잡무. 하긴, 높은 자리의 그들은 이것 또한 당연한 과정이라 일갈할 것이다. 절대무공의 비기를 배우기 위해 기어들어간 제자에게 다 필요없고 대뜸 물부터 길러오라는 무협고수의 태도. 그야 체력 관리 때문이었다는 변명이라도 있지만, 현대 사회 속 사무실에서 이건 좀 너무한 게 사실이잖아. 

2019년이라는 영화의 제작연도, 그리고 백악관에도 대표가 초청될 만큼의 거대 영화 제작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단 점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을 노골적으로 저격하는 영화다. 제인이 대신 정리하는 발기부전 치료제,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대표의 여성 편력 등. 여기에 목소리를 제외하면 담당 배우가 직접 그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 또한 없다는 점에서 이는 노골적인 타겟팅처럼 보인다. 그렇다, 미투 운동은 권력에 대항한 성 평등 운동의 일환이었다. 권력가들에 의해 목소리를 빼앗겨 있던 피해자들의 용기 서린 외침이었다. 프린터의 반복적인 작동방식으로 대변되고 있던 제인의 일과 역시 그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애초 그녀가 피를 본 것은 백악관에서 날아온 초청장 봉투를 열다 베여서 아니었나. 권력에 의해 상처를 입은 여자들, 사람들. <어시스턴트>는 그 역시도 정조준해 보여준다. 

그게 제일 잘 드러나는 장면은 역시 사내 상담사와의 독대 장면일 것. 내부 고발자를 대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총집산해 보여주는 사내 상담사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별 거 아니라는, 원래 다 그런 거라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금 닥쳐야만 한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여기서 슬그머니 끼어들어오는 또다른 폭력적 인서트. 아직 눈물을 채 흘리지도 않은 제인에게 들이밀어지는 휴지. 그 휴지를 담은 짧은 인서트는 최근 본 그 어떤 쇼트들 보다도 더 폭력적인 이미지였다. 그리고 이 폭력적인 장면은 제인에게 넌 그 분 취향 아니라는, 그래서 다행이라는 건지 뭔지 모를 모욕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비밀 보장 따위는 없었다는 에필로그는 더 혈압 오르게 하고. 

용기로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Nothing'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외침. 오래도록 꺼지지 않은 대표의 사무실 조명에도 결국 제인이 돌아서서 자신의 일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편하고 또 위험한 태도는 내 일이 아니라는 '나 몰라라'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제인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 '나 몰라라'의 태도를 어쩔 수 없이 체득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위정자들은 그 태도를 먹으며 끝까지 자라날 것이다. 

뱀발 - 패트릭 윌슨이 본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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