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캐리 후쿠나가 탐구 두번째 시간. 탐구의 경위는 첫번째 시간에서 이미 말했으니 생략.
각각 멜로 드라마와 액션 블록버스터로써 <제인 에어> & <007 - 노 타임 투 다이>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해봤자 영국을 배경으로한 유서 깊은 영국 콘텐츠라는 것 정도. 그 <제인 에어>에 비하면, 캐리 후쿠나가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일견 <007>로 가는 최단거리 필모그래피처럼 보인다. 영국에서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공간적 배경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총과 칼을 든 인물들이 쏟아져 등장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007>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병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답게,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007>과 같은 일반적인 액션 영화론 분류될 수 없는 영화다. 전쟁의 참상과 광기를 다룬 영화들은 많았지만, 이토록 개인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비극이라니. 그것도 그 비극의 주인공이 죄다 어린 아이들이라니.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그 시작부터 결말까지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잠시나마, 작게나마 평화롭던 시절. 아구는 동생과 동네를 누비고, 자신을 두고 엄마와 아빠가 입씨름 하는 순간을 몰래 훔쳐 보기도 하며, 그러다가도 또 금세 형과의 장난에 정신팔리는 한때를 보낸다. 대비를 통해 이후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한 잠깐동안의 평화. 그러나 이 초반부가 의미심장한 것은, 이 시기 아구가 보고 듣고 하고 느꼈던 것들이 중후반부 그가 소년병이 된 이후 다른 형태로 그를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도로를 막아두고 지나가던 차량을 붙잡아 애교 섞인 말을 통해 용돈벌이를 했던 소년은, 이후 도로에 매복하고 지나가던 적의 차량을 붙잡아 총알 섞인 전투를 통해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거머쥔다. 초반부 친형과 몰래몰래 엿보던 이웃집 소녀들의 이미지는 후반부 강간 당하거나 성착취 당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로 디졸브 된다. 이 뿐이랴. 잃었던 동생 대신 얻었던 동료 스트라이카는 총알받이가 되어, 죽었던 친형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민병대의 부대장은 사령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그 곁을 떠나게 된다. 평화와 전쟁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구. 이 대구들이, 아구와 아프리카의 비극을 더 강화시킨다.
그러는 동안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싶은 장면과 묘사들이 마구 속출하는 영화다. 전투의 규모나 액션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고, 다만 소년병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의 멘탈 상태가 걱정된다고 해야하나?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소년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꼬나물고, 마약과 환각제를 복용하고, 총은 물론 칼로도 사람들을 마구 썰어 죽이며, 민간인 여성들을 마구 강간 하는 건 물론이요, 심지어는 훨씬 더 어린 아이들을 마구 패는 장면도 등장. 험악한 로케이션이 예상되어 그 자체로도 촬영 때 죽을 맛이었을 텐데, 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묘사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걸까? 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서? 하긴, 그것도 말 되네. 시상식 시즌을 노리는 영화라 했을지라도 일반적인 스튜디오에서 이 정도 규모, 이 정도 묘사를 허용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하여튼 찍는내내 무진장 고생했을 것 같음.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제인 에어>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까지 보니, <007 - 노 타임 투 다이>에 대해서 예측되는 측면들이 있다. <제인 에어>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영화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나 과거로 연유한 트라우마로부터 인물들이 도망치거나 쫓겨났다는 등의 묘사는 동일 하거든. 어쩌면, <007 - 노 타임 투 다이>는 <007 - 스카이폴>과 <007 - 스펙터>에 이어 제임스 본드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폴>과 <스펙터>도 모두 제임스 본드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적들을 끄집어낸 셈이었잖아? <노 타임 투 다이>도 그러려나 보지... 게다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 은퇴작인데. 하여튼 같은 감독 영화라 해도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에서 <007> 이야기만 줄창 하고 있는 거 별로 보기 좋지 않으니 이만 줄여야겠다. <노 타임 투 다이>까지만 보면 이제 이 감독 탐구도 완성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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