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7 14:56

007 - 노 타임 투 다이 극장전 (신작)


감독 캐리 후쿠나가 탐구 기획의 마지막 편이자, 이 기획을 하게된 이유. 
캐리 후쿠나가 탐구 1부는 여기, 2부는 여기.


YES 타임 투 스포일러!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 은퇴작으로써, 해야할 건 꽤 많았던 편이다. 일단 당연히, 15년동안 본드로 재임한 다니엘 크레이그를 정성스럽게 잘 보내주는 것. 더불어 다니엘 크레이그 시리즈를 관통 했던 악의 조직 스펙터와 그 우두머리 블로펠드 역시도 정리해내는 것. 여기에 시리즈가 시리즈다 보니 당연히 멋진 액션 시퀀스들도 알차게 넣어줘야하고, 본드와 마들렌 사이의 멜로 드라마도 마무리 지어야하며, M과 Q를 비롯한 기존 캐릭터들 역시도 조금씩은 챙겨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부담이 아주 없었던 프로젝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야할 게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손에 쥐고 있던 것도 많았던 게 사실. 바로 직전의 시리즈였던 <스펙터>는 한 번 더 우려먹을 수 있는 거물급 악당 블로펠드를 순순히 살려둔채로 넘겨주었고, 악의 조직 스펙터 역시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는 판국이었다. 그러니까 <스펙터>의 부속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지언정, 그 부분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 온고지신 했다면 훨씬 더 유리했을 거라고. 

하지만 <노 타임 투 다이>의 선택은 또다른 새로움이었다. 기존 것들로만 지지고 볶아도 모자랄 판국인데 새 조력자 캐릭터 둘에 새 악당 캐릭터 하나를 또 욱여 넣은 뒤, 정작 제대로 마무리 지었어야 했던 구 악당은 토사구팽 해버린다. 이럴거면 블로펠드랑 스펙터 아예 빼버리고 그냥 사핀의 조직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채우든가... 왜 괜히 새 악당 세력을 그것도 마지막 편에 넣어버리냐 이거지. 있는 재료만 정리하고 봉합 해도 터지기 직전의 김밥이 될 운명인데 여기다 참치랑 멸치볶음까지 아낌없이 모두 투하. 근데 왜 그걸 마지막 편에서 하냐고...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블로펠드라는 전임자와 사핀이라는 현 실무자 사이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었다. 블로펠드는 다섯편을 끌어온 악당 치고는 허무한 퇴장을 부여받게 되었고, 또 사핀은 사핀대로 새 악당 임에도 마음껏 활개칠 공간을 부여받지 못하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사핀은 영화 시작 후 1시간 20여분이 지났을 때쯤이 되어서야 처음 등장한다. 제아무리 긴 영화라 하지만 이런 상황이니 관객으로서 새 악당에 적응할 새가 별로 없음. 그냥 감옥에 갇혀있음에도 전 세계를 주물럭 대는 블로펠드와 마지막 혈투를 벌였으면 안 됐던 거냐?

지금까지의 <007> 영화들에서,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의 존재는 항상 중요했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뮤직 비디오라 보아도 무방할 퀄리티 안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들을 채워넣어 왔거든. 그렇담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어떠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키워드는 '유전'이다. 수많은 권총들에서 발사된 총알들로 DNA를 표현해낸 것 자체가 핵심. 유전되는 폭력의 역사. 그렇다. <노 타임 투 다이>는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느닷없이 제임스 본드의 자식을 던져 놓는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지나온 폭력의 역사들을 반성하며 희생하는 노년 주인공의 이미지. 여기에 헤라클레스라 통칭되는 DNA 폭탄 역시 한 수 거든다. 

헤라클레스라는 무기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그것은 블로펠드와 본드 사이의 유사 형제 관계와, 본드와 마틸드 사이의 부녀 관계를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핵심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뿐. 이미 <레옹>과 <로건> 등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뻔한 희생의 이미지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결말이 10여년 전에만 나왔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결말이 최근 어디 한 두개였던가. 쓸거면 이미 너무 늦었다 이거지. 

다니엘 크레이그표 <007> 시리즈의 전통답게, 영화의 오프닝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훌륭하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액션조차 쭉 내리막. <제인 에어>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에서는 차마 확인할 겨를과 기회가 없었는데, <노 타임 투 다이>를 통해 캐리 후쿠나가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액션에 쑥맥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버렸다. 롱테이크를 쓴다고 무조건 장면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액션의 동선과 타격감이 우선적으로 기본 이상을 해줘야지. 그치만 후반부 사핀의 섬에서 펼쳐지는 액션들은 거의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림이라 불러도 모자랄 지경이다. 액션 영화인데 액션에 재미가 없다. 

십수년간 관객들과 소통했던 캐릭터의 죽음에 대한 결말이라면, 로건이나 토니 스타크에게 허락됐듯 적어도 남은 사람들이 끌어안고 울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시신은 보장해줘야하는 게 예의 아닌가.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여러모로 깔끔하게 폭사한다. 시신 수습 이딴 거 없음. 그냥 맹렬히 폭사. 이건 이거대로 또 신선하다. 신선한데 구미가 당기진 않는다. 

결론. 여러모로 캐리 후쿠나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연출작이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억지 은퇴식이었으며, 그런 거 다 떠나서도 한 편의 <007> 시리즈 영화로써 별 재미가 없었다. 오프닝 빼고 기억에 남는 건 아나 드 아르마스의 필로마 캐릭터 정도. 아니, 근데 다니엘 크레이그 은퇴식에서 아나 드 아르마스가 제일 기억에 남으면 그게 에러인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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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GA 2021/10/09 22:02 # 답글

    이제 계약이 끝나 제임스 본드를 떠나야하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위한 헌사... 정도로만 봐야할 듯 싶더군요. 문제는 그 헌사가 로건을 떠올리면 참 씁쓸해진다는 거겠죠...
  • nenga 2021/10/10 01:24 # 답글

    대니 보일이 절반 이상 해놓은 상황에서 하차하고 교체 투입되었다고 하던데
    그런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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