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12:22

더 길티, 2021 극장전 (신작)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그것도 할리우드의 안톤 후쿠아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걱정 먼저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 걱정이 비단 원작을 망칠 것 같아서만은 아니었다. 난 일단 안톤 후쿠아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지더라고. 리메이크 각본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원작을 떠올렸을 때 바꿀 만한 구석이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 고로 리메이크 연출자로 내정된 안톤 후쿠아가 과연 무엇을 얼만큼 바꿀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마 이 사람도 당황했을 거다. 별다른 변화없이 원작과 똑같이 가자니 리메이크의 의의가 없고, 그렇다고 또 할리우드식으로 무분별하게 바꾸자니 원작의 에센스를 잃게 되는 것 같고. 


더 스포일러!


결국 안톤 후쿠아의 선택은 원작의 기운을 95% 정도 유지하고 나머지 5%의 변화를 양념 삼겠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원작의 그것과 똑같다. 심지어 특정 쇼트는 원작에서 가져오기도 한 것 같고, 대사는 또 어찌나 똑같은지. 때문에 원작을 아직 안 본 사람들이 있다면, 덴마크의 <더 길티>와 미국의 <더 길티>를 두고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막말로 두 작품이 너무나도 유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둘 중 무얼 보아도 상관없는 것. 두 작품을 면밀히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굳이 두 편 다 볼 필요는 없단 소리다. 

때문에 이 리메이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원작과의 차이점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다. 리메이크는 원작과 비교했을 때 세 가지 정도가 다르다. 첫번째는 현장의 모습이 얼추라도 제시된다는 것. 원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실 내 주인공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영화였다. 현장의 사건들은 모두 주인공이 든 수화기를 통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덕분에, 원작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신의 무기로 둔갑시킬 수 있었지. 사실 리메이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고속도로 순찰대가 하얀색 밴을 세웠을 때의 상황 등이 딱 한 컷씩의 직접 묘사로 드러나있다. 재밌는 건 그걸 많이 넣은 것도 아니란 점이다. 줄곧 액션 영화들을 찍어왔던 안톤 후쿠아로서는 꽤나 욕심 났을 수도 있잖나.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절제를 해냈다. 원작처럼 아예 안 보여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들 상상력에 불을 붙일 부싯돌 정도의 역할을 할 쇼트들을 박아넣은 것. 

두번째는 주인공의 사연이 구체화된 점이다. 나이가 어린 용의자를 무분별하게 사살한 경찰이란 점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리메이크작은 여기에 가족적 사연까지 끼워넣는다. 다행인 건 주인공의 이러한 가족 관련 사연이 단순 감동 코드로써 사용되진 않는단 점이다.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때문에 아끼는 어린 딸을 자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주인공의 이러한 설정은 그가 걸려온 전화 속 상대 여성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고 좀 더 쉽게 믿게하는 일종의 동기 부여고 또 각본적 장치다. 소위 말하는 공감의 마법. 아내와 싸워도 봤고, 또 어린 딸을 애틋하게 느끼고도 있는 주인공 베일러의 입장에서 에밀리의 사연은 몰입 100% 가능한 상황이지. 이 부분은 원작보다 좀 더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을 보면, 최근 직업 윤리 마저도 저버렸던 주인공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끝장내는 것까지 감수하면서도 상대를 돕는단 설정이 잘 이해 가지 않았거든. 리메이크작은 이 빈 자리에 가족적 사연을 집어넣음으로써 주인공의 폭주에 개연성을 부여해냈다. 

이제 세번째, 마지막 차이점. 물리적 분량으로는 이 마지막 차이점이 가장 작고 약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소한 차이점이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분위기를 완전히 벌려놓는다. 그건 바로, 에밀리의 어린 아들이 적어도 일단은 살아남는다는 것. 원작의 어린 아들은 그 창자가 밖으로 터져 나왔을 정도로 잔인하고 확실하게 죽었다. 바로 그 때문에 원작이 더 밑도 끝도 없이 어둡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하지만 리메이크작의 어린 아들은 중상을 입었을지언정 일단은 살아남는다. 자기변명에 가까워보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이 자기반성을 결심하고 또 이행하자 끝내 소복소복 찾아온 희망. 모든 걸 끝까지 감내하고, 버티고, 노력하고, 용기내면 결국엔 작디 작은 희망이라도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란 믿음. 원작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해피 엔딩에 아주 조금은 가까운 엔딩이라 왠지 이것이야말로 할리우드식 엔딩이 아닐까- 또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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