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은 중독과 대기업 비리의 대표적 이미지를 전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아버린 폭로 사진. 그 배경이 되는 실제 사건 역시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고, 여기에 주인공의 얼굴을 도맡은 조니 뎁의 얼굴까지 추가. 작품 면면만 따져보면 코로나 19 시국이었다 할지라도 좀만 더 욕심내서 충분히 극장 개봉 할 수 있었을 법한 영화였음에도 결국은 티빙 독점으로 공개. 일단은 코로나 19도 문제였겠지만 현재 조니 뎁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극장 개봉 불발의 가장 큰 이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다 보고나니 상기했던 문제점들 외에도 일단 영화 만듦새가 그냥 그럭저럭이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 아니었을까 싶음.
첫 문단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기획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제작 당시만 하더라도 미래 조니 뎁의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나빠질 거라고는 예상 못했겠지. 고로 그 점을 차치하고 봤을 때, 캐스팅도 나쁘지 않았다. 정확한 제작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조니 뎁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군림한 사람이었으니까.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나다 히로유키, <곡성>을 필두로 최근 <케이트>까지 발판삼아 여러 할리우드 영화들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한 쿠니무라 준. 그리고 조니 뎁과 꽤 오랜만에 해적 케미를 보여주는 빌 나이까지. 캐스팅이 좋고, 무엇보다 소재가 가진 파급력 또한 실제로 대단했잖나. 특히 유진 스미스가 촬영한 토모코의 목욕 사진은 대기업의 자연공해 비리 사실을 알리는 폭로 사진으로써도 훌륭했고, 그와 동시에 부모 자식간의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뭉텅뭉텅인 듯한 느낌이 든다. 구워먹으려고 뭉텅뭉텅 토막낸 고등어 같음. 조니 뎁이 연기한 유진 스미스는 전형적인 신경질적 예술가로 묘사되는데, 동시에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하고자 만든 가족 사연이 너무나도 대충 언급된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가족 관계는 간접적으로 찔끔찔끔 언급될 뿐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대체 왜 이 인물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런 고생까지 해가며 미나마타의 사람들을 끝까지 도우려고 하는 건지 잘 공감이 가질 않는다. 아니, 물론 미나마타의 사람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했고 또 거기서 정까지 느꼈기 때문에 도우려고 하는 건 알아... 근데 그럴 거면 그걸 좀 더 제대로 묘사하든가... 장애를 가진 동네 소년과의 인간적 교류 역시 대충 두세번에 걸쳐 피상적으로 묘사될 뿐이고, 여기에 더불어 아일린과의 로맨스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움.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한 칫수 기업의 비리와 부정도 다뤄야하고, 그들에 맞서 투쟁하는 마을 사람들의 패기와 결기도 다뤄야하고, 또 미나마타 마을 사람들이 겪는 인간적 고통과 그 안에서의 감동도 다뤄야하고, 그 사이에서 폭로 사진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유진 스미스의 첩보 영화적 모멘트도 다뤄야하고, 또 그와중 유진과 아일린 사이의 멜로 드라마도 다뤄야한다. 이렇게 나열만 하면 한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면면히 따져보면 또 아주 못할 분량도 아니었다. 상술한 소재와 주제들이 모두 서로 어느정도는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이거든. 그러니까 잘 엮기만 했으면 됐던 모양새인데, 영화는 이거 하다가 또 저거 하다가 갈팡질팡하는 느낌이다. 소재들이 동시에 컨트롤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무엇보다 다른 건 몰라도 토모코의 목욕 장면, 그리고 그걸 촬영하는 유진의 모습만큼은 좀 더 제대로 깊게 다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숨죽였어야 했을 장면이 뭔가 그냥 밍밍하다. 이 소재로 이렇게 파급력 못 갖추기도 참 어렵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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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6 17:01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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