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23:07

브리트니 VS 스피어스 극장전 (신작)


사실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누군지는 알지. 그런데 팝 스타로서 누렸던 이 양반의 최전성기 시절이 2000년대 초반인 것 같더라고. 그 당시 나는 어렸고 음악을 그리 넓게 많이 듣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팝송에 문외한이었다. 고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이름은 들어봤으나, 그리고 또 그녀 히트곡의 후렴 정도는 들으면 "아, 이거!"라며 따라 흥얼거릴 수 있으나 정작 그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와 그 노래 속 목소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것이었는지는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나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적어도 이 다큐멘터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소개하고, 또 그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나가다가 그 이후에나 그녀와 그녀 가족들 사이 법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거 없더라고. '세상에 브리트니 스피어스 잘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하는 태도로 영화는 냅다 돌진 해버린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음색을 가졌는지, 어떻게 가수가 되었고 또 어떤 대표곡들을 냈으며 이후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어느정도인지 등등. 설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간단한 인트로? 정도는 해줄 거라 기대했는데 그딴 건 다 최소한도로 축약하곤 곧장 그녀의 트라우마와 공포로 파고든다. 

<노팅 힐>이 그랬고, 최근엔 <스타 이즈 본><보헤미안 랩소디>가 보여주었듯이. 영화는 유명인의 삶, 그리고 그 유명인의 연인으로 잠깐이나마 사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고 괴롭고 또 무서운 일인지를 잘 묘사 해낸다. 사실 앞서 언급 했던 영화들은 상대가 안 되지. 그건 극이거나 최소 극화한 극 영화들인데 반해,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다큐멘터리잖아. 그 안에서 보여지는 모든 풋티지들은 죄다 '리얼'인 거잖아. 그래서 더 무섭다. 그저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 식료품점이나 주유소에 들렀을 뿐인데, 영화제 레드카펫 뺨치듯 밀려오는 파파라치들의 파도.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와중인데도 좀비 마냥 끝까지 따라붙어 카메라를 구급차 창문으로 들이미는 미친 인간들. 할리우드에서 셀러브리티로 살아본 적 없는 나조차도 몸서리치게 만드는 불편한 실제 풋티지들.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는 그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받았을 스트레스와 공포를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이 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브리트니와 스피어스 일가의 법리 다툼. 그런데 여기서 브리트니가 겪은 대부분의 공포들에 원흉으로 제시되는 그녀의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의 존재가 참으로 미스터리하다. 이게 다큐멘터리라고는 해도, 거짓 이면의 진실까지 확실하게 팩트 체크 해가며 발굴해내는 포맷의 작품은 아니거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과 문제만 제기할 뿐, 그리고 제이미 스피어스의 캐릭터만 일방적으로 조형할 뿐 뭔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거나 밝혀지는 게 없다. 물론 마지막에 재생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법정 발언이 그 모든 의혹들을 어느 정도는 밝혀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로써 뭔가 완전무결하게 해결해주는 건 없음. 

다큐멘터리로써 더 큰 문제가 있다. 긴 시간적 배경에 여러명의 인물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데, 보는 이들이 알기 쉽게 쏙쏙 이해시켜주며 정리해야했던 부분에서는 실패한 듯 보이거든. 변호사에, 친구에, 동료에, 가족 등등 관련 인물들이 마구 언급되고 또 마구 등장해 한 마디씩 하는데 편집 템포도 너무 빠르고 정보량 역시 너무 많아서 관객 입장에서는 이야기 흐름이 잘 정리 안 됨. 말 그대로 두 눈 부릅뜨고 뇌 회전 팽팽히 굴려가며 봐야하는 영화.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 VS 소재에 저당 잡힌 다큐멘터리 구도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제목 하나는 끝내주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제목 하나만큼은 진짜 엄청 잘 뽑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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