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시간 여행을 다루는 영화들은 많았고, 또 그와중 과거로 간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부모와 조우하는 영화들 역시 많았다. 그럼에도 이 관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빽 투 더 퓨쳐>겠지. <빽 투 더 퓨쳐>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들로리언을 타고 돌아간 과거에서 자기 또래인 아버지를 만난다. 그런데 그 아버지란 양반은 어린 시절부터 속칭 찌질이였고, 장차 마티의 어머니가 될 그녀에게 고백 한 번 못 건네는 그런 작자였다. 이어지는 마티의 우당탕탕 아버지 체인지업 대소동. 이렇게 마티가 과거에서 만난 자신의 아버지에게 멘토 아닌 멘토, 큐피트 아닌 큐피트가 되어주었다면 <쁘띠 마망>의 넬리는 자기 또래로 만난 엄마 마리옹과 그저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빽 투 더 퓨쳐> 정말 재밌고 좋은 영화지만,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부자 간의 역전은 다소 잔소리 복수 같은 느낌이 있거든. 부모 세대에게 잔소리를 듣던 자식 세대가, 거꾸로 부모 세대에게 잔소리를 역으로 되돌려준다는. 하지만 <쁘띠 마망>은 그저 어렸던 부모와 친구가 되어주는 자식의 모습으로 반대 노선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가,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과연 나는 그 때의 부모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인가.
부모가 자식에게, 또 자식이 부모에게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 등에 기반한 이른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상쾌하고 맑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난 넬리가 마구 호들갑을 떤다거나,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이 시간 여행에 대한 과학적 이유를 찾아 나선다거나 하지 않는 점 역시 좋다. 어린 넬리에게 어린 마리옹은 그저 친구일 뿐인 것이다. 그걸 가지고 놀라 자빠질 일도,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그녀에겐 없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순수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또 영화는 그 순수함에 응할 뿐.
사실 셀린 시아마의 전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세간의 평가만큼 재밌게 보질 못했었다. 당시 그 영화 재미없게 본 사람이 나뿐이었던지라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었지. 그럼에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인상적인 몇몇 이미지들을 끝내 관객들에게 남기고야마는 미덕을 가진 영화였음만은 인정한다. 그리고 런닝타임을 훨씬 더 간결하게 정리해낸 이번 <쁘띠 마망>은 영화가 가진 리듬감과 생기도 훨씬 좋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이어 몇몇 따뜻한 이미지들을 이번에도 기어코 남겨내고 만다. 엄마, 아빠, 어머니, 아버지, 부모, 부모님 등과 같은 호칭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이름으로만 그들을 불러보는 경험. 장유유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망상이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나니 괜시리 넬리를 따라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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