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1 23:22

스틸워터 극장전 (신작)


이것은 딸이 누명을 썼다 믿고 그것을 벗겨내려하는 한 아버지의 추적극이다. 동시에 최강대국 미국의 문제 해결 방식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 우화이기도 하며, 또한 그저 인내하고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때론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전달하는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스포일러 워터!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와중,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은 양심과 사랑이라고 <스틸워터>는 말한다. 매순간 기도를 실천하는 독실한 기독교도 빌 베이커. 그러나 그녀의 아내는 자살했고, 프랑스로 유학보낸 하나뿐인 딸은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 되었다. 심지어 죽은 피해자는 딸의 레즈비언 연인이었던 이슬람교도. 자살, 살인, 동성애, 이교도. 빌이 믿는 신 입장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봐줄 구석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 갇힌 딸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결정타를 먹이는 것 역시 딸이다. 결말부, 빌은 자신의 딸이 아주 무고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진짜로 죽일 줄은 몰랐다는 나이브한 변명으로 눈물을 보이지만, 어쨌거나 딸은 당시 자신의 연인을 죽여줄 것을 다른 남자에게 청부 했다지 않나. 오클라호마 출신 무뚝뚝한 블루 칼라 노동자 빌은 이같은 딸의 충격적 고백에도 그 다부지고 무거운 몸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그는 딸을 구했을지언정 자신이 다시 쥐고 있던 대부분의 것들을 잃은 이후다. 아버지인 자신을 혐오하고 심지어 결국엔 완전무결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는 딸을 위해 빌은 어떤 일들을 벌이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그는 자신의 인간적 양심과 종교적 신념을 모두 포기한채로 주요 용의자인 남성을 잡아 사적 복수 비슷한 짓을 행하였다. 그리고 이로인해 자신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줄 여자와 어린 아이를 또 모두 잃었지. 물불 안 가리지 않던 집념으로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와중, 그럼에도 빌은 끝까지 양심과 사랑만큼은 잡고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빌 베이커라는 한 남자의 관점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지만, 빌과 처음 만난 마야가 그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에서부터 <스틸워터>는 미국적 우화로도 읽히기 시작한다. 빌은 과거의 미국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도고 가족을 제일 아끼면서도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그런 빌이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독수리를 '미국'의 상징물로써 마야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스틸워터>의 빌은 곧 미국 그 자체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빌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보고 있노라면, 외국에서 벌어진 자국 관련 일들을 현대의 미국이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가 훤히 보인다. 소위 말하는 '좋은 이유'와 '좋은 의도'를 위해 거짓을 일삼고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며 끝내는 그 의도성과 관련성을 부인하는. 나중에 제대로 정착한 뒤부터는 조금씩 배워나가긴 하는데, 그럼에도 빌이 프랑스에서 오직 영어로만 소통하려 하는 초반부 모습 역시 썩 미국인 같다. 

맷 데이먼은 정말로 다부지게 연기하고, 카미유 코탱은 자신의 매력을 십분 뽐내며, 아비게일 브레슬린은 <미스 리틀 선샤인>의 그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그냥 대견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섞어낸 토마스 맥카시의 연출력에 박수를. <스포트라이트>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건조하고 느린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충만한 영화를 정말로 능히 만들어내는 연출자인 것 같다. 다음 영화로 얼른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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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2021년 영화 결산 2022-01-02 13:56:56 #

    ... &lt;스틸워터&gt;</a> (토마스 맥카시) 초반만 보면 이역만리 타국으로 건너간 미국인 아버지의 &lt;테이큰&gt;식 액션 추격 영화인가 싶지만, 결말까지 다 보고나면 씁쓸한 인간 드라마가 한 편으로써 영화가 다가오게 된다.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만 그들 사이 관계의 전성기는 모조리 과거에 남아있는 부녀. 그 딸을 구하려다 아버지는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유사 가족을, 그리고 그들을 통해 얻었던 행복들을 모두 잃게 된다. 그 한이 서린 후반부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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