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 14:41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극장전 (신작)


<남한산성>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역사와 영화가 현재와 현실에 감응하는 순간이 <남한산성>에는 존재한다고.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역시 마찬가지다. 리들리 스콧은 14세기의 오래된 이야기를 끌어와 그 빛으로 지금의 세계를 비춘다. 몇몇 용기있던 자들의 고발로 촉발된 미투 운동과 그에 따른 페미니즘의 진보. <라스트 듀얼>은 결투 재판이라는 소재로 700여년 전에 벌어졌던 일을 통해 700여년 후의 상황까지 그려낸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칼싸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들 중 <글래디에이터><킹덤 오브 헤븐>을 가장 먼저 떠올렸건만, 실상 다 보고 나면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과 <델마와 루이스>의 감독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오롯하게 떠올리게끔 만드는 영화. 


스포일러 듀얼!


영화는 <라쇼몽> 스타일의 3막 구성을 취한다. 1장은 카루주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설명되며, 이어지는 2장에서는 카루주와 반대편에 서 있는 르 그리의 입장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3장이 이 영화의 실질적, 감정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르그리트의 시점. 하지만 이런 종류의 다른 영화들이 과연 주인공들 중 누구 말이 진실인지를 확실하게 숨기는 것과는 달리, <라스트 듀얼>은 마르그리트의 3장에 이르러 이것이 분명한 '진실'임을 공고히 한다. 

재밌는 게 있다. 관람 전, 전체적인 줄거리와 함께 영화가 <라쇼몽>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당연히 르 그리의 입장을 전개할 때 강간 관련 묘사가 아예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가 마르그리트를 겁탈한 게 사실이라고는 해도, 르 그리 입장에서야 그 사실을 당연히 숨길 줄 알았던 거지. 그래서 1장과 2장에 걸쳐서는 사건의 진위 여부를 모호하게 만들어두다가, 마지막 3장에 이르러서야 모든 사실을 다 발가벗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영화의 2장은 좀 더 솔직한 편이었다. 르 그리를 주인공 삼아 그의 입장에서 전개 됨에도, 2장은 그의 마르그리트 강간 사실을 명백히 한다. 아니, 왜? 이야기 내적으로는 르 그리 된 입장에서 그걸 숨기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이야기 외적으로도, 2장에서는 그것을 숨겼어야 3장의 그 효과가 더 강해지는 것 아닌가? 

바로 그 점에서 각본과 연출이 빛난다. 겁탈을 자행한 남성들은 애초 이를 숨길 필요 따위가 없었던 것이다. 관계를 맺은 것 자체, 그것도 친구의 아내인 유부녀를 겁탈한 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일 지라도 어쨌거나 사랑 앞에서 무력 했을 뿐이라는 낭만적 변명 하나면 남성들에겐 그 모든 게 다 끝났던 것이다. 르 그리도 그 부분에서는 솔직하다. 겁탈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예롭지 않은 행위는 아니었다-고 자랑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뻔뻔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 음주를 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궤변이 떠올라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여튼 바로 그런 영화적 방식으로 인해, 2장의 강간 장면은 르 그리 입장에서 순화 되었을지언정 삭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그 부분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적당히 노골적인 묘사 때문에 이야기가 더 (좋은 의미로) 불편해졌다. 누구나 생각할 법한 뻔한 방식으로 가지 않은 전개 덕분에, 영화적 맥락이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성이 그저 남성들의 소유물로만 인식되던 시대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목소리를 낸 여인의 이야기. 더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영화는 현재의 미투 운동을 그대로 투영 해낸다. 그 부분에서 영화가 감정적으로 파워풀하고 또 드라마틱한데, 정말 대단한 건 얼마 있지도 않은 액션 역시 투박하되 화끈 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스펙터클을 관객들에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들에게 제대로된 전사와 감정들을 부여해내어 관객들을 액션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물론 3장까지 다 보고나면 최후의 결투에서 카루주와 르 그리 둘 중 누가 이겨도 속이 편하진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그 결투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메시지에만 천착하지 않고, 장르 영화로써의 기본기도 알뜰하게 다진 거장의 원투 펀치. <에이리언 - 커버넌트> 등으로 한동안 감이 떨어진 건가 싶었던 거장이 이렇게나 멋지게 돌아오다니, 조금의 의심을 품었던 불신자가 이렇게 회개합니다. 

<프리 가이>에 이어 본격적으로 영화 필모그래피 시동을 거는 듯한 조디 코머의 얼굴과 옆태가 인상적이다. 여기에 맷 데이먼은 평소의 순둥순둥한 이미지를 벗어던진채 거친 면모를 선보이고, 아담 드라이버는 연기를 너무 잘해 이제는 그냥 잘생겨보인다. 그리고 조금 놀란 건 벤 애플렉. 커리어에 길이 남을 연기를 보여줘서는 아니고, 원래 이 형 미국 본토에서도 약간 망나니 이미지 있지 않아? 그런데 본인이 이런 순도 100% 망나니 캐릭터를 선택해 연기하다니... 물론 본인이 각본도 썼지만... 연기력의 여부를 떠나 여러모로 그냥 깡이 참 대단하다 싶다. 

뱀발 - 부제 대체 왜 붙인 거냐.

뱀발2 - 프랑스 배경인데 등장인물들이 다 영어 쓰는 거, 영화 초반부 전개가 뭉텅뭉텅 잘려나간 것 같다는 거 정도만 빼면 큰 불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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