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9 13:05

고장난 론 극장전 (신작)


현실 세계의 애플을 레퍼런스로 삼은 게 분명해 보이는 IT 기업 버블이 신제품을 출시한다. 제품의 이름은 비봇.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 크기와 무게의 스마트 로봇으로, 사진 촬영은 물론 인터넷 서핑과 쇼핑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특색이 있는 스킨으로 한껏 꾸밀 수도 있다. 전세계의 소비자들, 특히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열심인 어린 세대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출시된 비봇의 결과는 대성공. 하지만 그러한 1인 1비봇 시대에도 자기만의 비봇을 갖지 못한 소년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우리들의 주인공 바니 되시겠다. 

눈치챘겠지만, 비봇은 현실 속 스마트폰을 반영한 로봇이다. 정보 공유를 넘어서서 사용자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고, 또한 IoT로 연결된 갖가지 것들을 통해 교통수단의 일환으로써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중에서도 영화의 중점적인 착안점은 SNS. 이미 여러 다큐와 뉴스들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우리 시대의 SNS들은 그 긍정적인 점 못지 않게 부정적인 점 역시 팽배해있다. 한 아이의 삶을 망칠 수도 있고, 한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고장난 론>은 바로 그 부분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스마트폰의 SNS에 빠져든 아이들, 목숨까지 건 아이들. 그런 우리의 아이들,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사실 나는 그런 반문을 소리내어 할 처지가 못된다. MZ 세대 앞자락에 겨우 올라탄 나 역시 스마트폰의 덕을 많이 보았다. 2G에서 3G로 넘어가는 순간을 목도했고, 그래서 더 스마트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자녀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런 내가 "요즘 애들이 스마트폰 때문에 다 망가지고 있다니까요!"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그러나 그렇게 스마트폰의 효용성을 직접 체험한 나로서도, 종종 과거가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친구가 자신의 스마트폰 보느라 내 말과 질문에 영혼없이 답할 때, 나조차도 스마트폰을 하느라 지하철 창밖으로 펼쳐진 윤슬어린 한강 풍경을 놓쳤을 때, 유튜브 화면과 모바일 게임을 핑계삼아 옛날만큼 책을 읽지 못할 때 등등. 그래서, 아직 자녀가 없음에도 그런 소망을 가진다. 이런 스마트한 세상에서, 내 미래의 아이들은 조금만 더 멍청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고장난 론>은 종종 이야기의 이음새가 덜컹거리고, 또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로 뻔해진다. 주 소재만 스마트폰과 SNS로 바뀌었을 뿐, 이미 여러번 되풀이 되어온 '현재를 살아라'란 테마 역시 지나치게 익숙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장난 론>은 단지 스마트폰과 SNS를 주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꽤 적절한 시의성을 가진다. 

영화 자체는 디즈니의 폭스 인수 시기에 맞물려 다소 붕뜬 경향이 있는데, 이보다 더 늦게 개봉 되었으면 큰 일날 뻔했다. 시의성이 중요한 작품들은 개봉일 역시 중요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의 시대가 몇년 안에 종식 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더 커지면 커졌지. 하여튼 비슷한 테마를 다룬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과 비슷한 해에 공개 되었다는 것 역시 재밌음. 물론 유머는 그쪽이 훨씬 더 낫지만 말이다. 

뱀발 - 버블은 애플처럼 보이는데, 극중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앤드루는... 왜 이렇게 팀 쿡 같이 디자인해놨지? 이쯤 되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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