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인, 혹은 괴짜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레오 까락스의 신작. 그리고 그 필모그래피 최초의 음악 영화이자 영어 영화. 그런데 최초의 음악 영화이자 영어 영화인 것치고는 크게 이물감이 없었고, 또 괴짜가 만든 신작치고도 그렇게까지 괴이 하지는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슬프고 우습다. 또 우습다가도 슬프다. 더불어, 다른 건 몰라도 엄청나게 힘있고 아름답다.
스포 까락스!
뮤지컬 영화인지라 그런 감이 더 강해지는데, <아네트>는 지극히 연극적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다분히 메타적이다. 레오 까락스는 자신의 딸과 함께 영화의 초반부에 직접 등장해 관객들을 <아네트> 안의 세계로 초대한다. 아니, 초대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데리고 들어가 밀어넣는 느낌이다. 그의 평소 이미지에 비해서는 굉장히 젠틀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그렇게 영화는 등장배우들과 감독의 힘있는 목소리와 생기로 포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이게 엄청나게 효과적이다. 뭐, 시작부터 끝소리 같긴 하지만 영화를 전반적으로 엄청 재밌게 본 것까진 아녔거든? 하지만 영화의 전반부, 특히 이 오프닝 만큼은 거의 압도적이었다. 뒤로 갈수록 영화가 좀 늘어지는 감이 있어서 그렇지, 전반부는 대단히 훌륭하다. 전반부가 계속 관객들을 밀어붙이는 듯한 모양새다.
이야기 나온 김에. 아기 아네트가 본격적으로 데뷔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즈음부터 영화는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감정적으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마리옹 꼬띠아르의 캐릭터가 사망하고 난 이후이니. 게다가 솔직히 뭐, 엄청 대단히 신선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 역시 아니라서. 영화의 후반부는 이미 닦일대로 닦여있는 익숙한 길로 뚜벅뚜벅 걸어 가거든. 아네트의 재능을 알아본 헨리가 그녀를 전세계에 팔아먹고, 그로인해 많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또 딱 그만큼 타락하게 되고, 결국에는 동료이자 연적 아닌 연적이었던 작곡가까지 죽이게 되는. 그리고 그 때문에 아네트와도 멀어지게 되고, 본인 스스로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딱 '미쳐가는 예술가의 타락'을 다루는 영화들의 기본 공식이잖아.
그럼에도 영화의 힘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이유는 다름 아닌 아담 드라이버 때문이다. 최근 <라스트 듀얼>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제 이 사람은 그냥 잘 생겨 보인다. <인사이드 르윈>을 처음 볼 때는 눈에 채 들어오지도 않았었고, <깨어난 포스>에서조차 솔직히 못 생긴 배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달리 보인다. 역시 사람은 자기 본업을 제대로 잘 해낼 때 멋져보이는 법이다. 연기력이 치사량 수준으로 흘러 넘치게 된 아담 드라이버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잘 생겼다. 사실상 이 영화는 아담 드라이버의 포트폴리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멜로 드라마적 연기와 코미디, 광기, 뮤지컬, 심지어는 섹스 연기까지도 넘나드는 우렁찬 면모. 그리고 그 연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역할로 혼자 무대 위에서 모노 드라마 찍을 때 가히 정점에 달한다. 진짜 다 까놓고 말하면... 레오 까락스의 지분 보다도 아담 드라이버의 지분이 더 커보이는 영화. 톰 크루즈 이후로 오토바이를 이토록 멋지게 타는 배우 오랜만에 본다.
중반부까지의 텐션을 후반부에서도 쭉 유지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좀 덜 뻔했으면 역시 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버전 그대로도, 레오 까락스의 성취가 그대로 느껴져 싫지 만은 않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편. 그 나이, 그 은둔 생활에도 감정과 테크닉 모두를 장악한 괴짜 감독의 성취. 그리고 그를 든든하게 지원 사격하는 주연배우의 풍부한 양감. 배우와 감독의 행복한 영화 생활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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