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0 15:12

이터널스 극장전 (신작)


관람 전, 로튼 토마토 평가도 그렇고 실 관객들 역시 극명한 호불호를 보였기에 걱정했었다. 하지만 웬걸, 보는내내 '이거 나만 재밌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게 관람. 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치고 물리적인 액션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일견 이해가 간다. 그 부분도 좀 더 신경 써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피니티 워>를 재밌게 봤음에도 다소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듯, 나는 액션 보다는 서사가 좀 더 들어찬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인피니티 워>보다 <엔드 게임>을 더 즐겼던 거고.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이터널스>는 어느정도 날 만족시켜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판받고 있는 액션 측면도 난 꽤 괜찮았다고 생각 하거든. 


태초의 스포일러!


말나온 김에 액션부터. 이미 언급했듯, 영화 속 액션의 물리적 분량은 좀 더 보충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양 말고 질로 따지자면 대만족이다. 보통 MCU의 액션을 이야기할 때 신약성서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꼽는다. 여기엔 이의가 없다. 이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로 이어지는 루소 형제의 면모는 진정 대활약이었다. 하지만 불만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시빌 워> 초반 블랙 위도우의 대인격투 액션은 지나친 쉐이키 캠 사용으로 어지러웠거든. 물론 꼬투리 잡기라는 거 안다. 그만큼 <시빌 워> 재밌고 좋은 영화니까. 하지만 관객으로서 이 정도의 사소한 불만은 가질 수 있는 거잖나. <본 슈프리머시>에서 폴 그랜글래스가 촉발시킨 이후, 핸드헬드 및 쉐이키 캠으로 현장감 넘치는 액션을 담아내는 방식은 할리우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 액션 영화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장점? 당연히 앞서 말한 것처럼 넘치는 현장감과 박력감이지. 그렇다면 단점은? 앞뒤 재지 않고 카메라를 마구 흔들어버리기 때문에 액션의 명확한 합이 제대로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 물론 이 분야의 본좌는 <시빌 워>가 아니라 <트랜스포머> 시리즈일 것이다. 솔직히 그 영화 속 격투 씬에서 피아식별 제대로 해내는 관객이 더 드물 걸? 복잡한 CG 덩어리 둘 이상이 엉겨 붙어 싸우는데 카메라도 마구 흔들어대기까지 하면 도대체 어느 쪽이 우리 편인지 안 헷갈릴 수가 없다. 

<이터널스>는 그 부분에서 우아하고 명확하다. 카메라를 많이 흔들어대지 않아 현장감은 좀 덜할지언정 적어도 액션의 합 만큼은 깔끔하게 전시된다. 더불어 <어벤져스> 시리즈 급까지는 아니지만 10여명이나 되는 캐릭터들의 팀플레이도 잘 배분해두었다. 아마존에서 이카리스가 다수의 데비안츠와 한 판 붙는 장면은 명징하고, 또 이후 그런 이카리스와 대결하는 다른 이터널들의 활약 또한 다채롭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클로이 자오라는 감독의 이력 때문에 여러 이터널들 중 공격형 보다는 지능형 캐릭터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마인드 컨트롤이나 환영 투사 등의 능력을 갖고 있는 드루이그와 스프라이트 등 보다 오히려 테나, 마카리 등의 매파 멤버들이 더 돋보인다. 특히 마카리. 솔직히 테나와 길가메시는 능력만으로 보자면 헬라와 헐크 하위호환 정도의 느낌이거든. 하지만 마카리는 같은 동네 스피드스터로서 姑 퀵실버를 가뿐히 제압 해버린다. 옆동네 <엑스맨> 유니버스의 퀵실버와 다른 동네 플래시가 주변의 상황을 슬로우모션으로 표현해 스스로의 빠른 속도를 강조한 것과는 반대로, 마카리는 타고난 박력감으로 공간을 휩쓴다. 액션의 컨셉도, 그리고 그걸 담아내는 방식도 모두 마음에 든다. 

이렇듯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로 여겨지는 액션 측면에서 조차 만족해버리고 말았으니, 다른 부분들도 크게 불만이 없겠지. 캐릭터의 설정과 캐스팅 활용 역시 장점이다. 솔직히 다른 놈들은 몰라도 드루이그 만큼은 뒷통수 세게 때릴 줄 알았다. 캐스팅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리 키오건이잖나. 사람 열 받게 하는 연기로는 최근 배우들 중 최강자. 게다가 능력은 마인드 컨트롤이고 대표 컬러도 검정색. 심지어 이 새끼는 뭔 아리 애스터 영화 마냥 컬트 종교 집단처럼 보이는 마을에서 생활 중. 누가봐도 이 새끼가 배신 때릴 분위기였는데 이걸 꺾음. 애초 명확한 의도를 갖고 한 캐스팅인 거지.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배신자 & 악역의 자리에 이카리스가 발을 붙인다. 나는 이거, 굉장히 영리해 보이더라. 이미 주요 등장인물만 해도 10여명이 넘어가는 상황인데, 여기에 새로운 악역을 하나 더 붙이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안에서 돌아서게 만든 거. 근데 또 그 과정이 이해가 돼. 이카리스의 논리와 동기가 이해된단 측면에서 역시 성공이다. 

이카리스의 변심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는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언급 해야겠지. 영화의 주제는 비교적 뻔한 편이다. 여러개를 늘어놓는데 대표적인 게 구원자 테마. 구원자인 줄 알았던 내가 오히려 가해자였다면? 특별한 존재인 줄 알았던 내가 알고보니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양산형 개체에 불과했다면? 문명을 쌓아올린 만물의 영장 인간이 사실은 도축을 위해 길러지는 돼지와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등등. 모두 흥미로운 주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미 앞선 수많은 SF와 판타지 영화들을 통해 이와 같은 주제들을 면밀히 탐구해왔다. 그러니까 더 이상 신선한 이야기는 아닌 것.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을 텐데, 그럼에도 그 주제들이 영화와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그것조차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이터널들은 모두 신과 같은 존재들이고, 인류 문명의 초창기에 태동한 여러 신화들 속 존재들과 일 대 일로 상응된다. 테나는 그리스 신화 속 전쟁의 여신, 길가메시는 그 이름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한다. 이처럼 그들은 신화 속의 인물들이다. 그런데 애초에 '신화'라는 것에서는 인간과 인류가 어떻게 다뤄지는데? 보통은 신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그들의 창조물로서 인류가 그려지지 않나. 그러니까 신화와 종교 속에서 인류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신에게 사랑받는' 생명체다. <이터널스> 역시 중반까지는 인류를 그런 태도로 대한다. 하지만 영화 중반 특정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후부터, 인류는 그저 양분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격하된다. 나는 이 테마가 이 영화와 꽤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고로 영화에 무척이나 만족한 편. 그나마 남은 몇 가지의 아쉬움은 모두 말그대로의 '아쉬움' 뿐이다. MCU 같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에서 깊게 탐구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끌어다 놓고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다루고 끝냈다는, 그런 아쉬움 정도. 근데 또 그 정도라도 다룬 게 어디냐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들고. 하여튼 여러 의미로 기존의 마블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화인데, 지금까지 20여편 넘게 이어져온 프랜차이즈에서 한 편 정도는 이렇게 해도 괜찮지 않나. 마블 영화에 갖는 기대감 못지 않게 그 피로도 역시 어느정도 쌓인 상황인데, 단순히 외우주나 멀티버스 등의 배경을 바꾼 것만으론 그 피로도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매번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끔은, 좀 색다른 작가주의적 선택을 하는 마블 영화가 보고 싶다 이거지. <노매드랜드>는 재미없어서 기겁했었는데 <이터널스>는 또 잘 찍어놨네. 속편도 클로이 자오가 맡아줬으면 좋겠다. 

뱀발 - 다양성 측면에서 할리우드의 기존 PC 관행에 대한 반감 때문에 싸잡아 욕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지금까지 할리우드가 마구잡이로 쏴댄 PC 빔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PC 아닌가? 인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 하면서도 또 그런 인류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신적 존재들인 건데, 그 중에 게이도 있고 농인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또 동양인이나 흑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캡틴 아메리카가 갑자기 게이로 커밍아웃을 한다거나 블랙 위도우가 이름 그대로 흑인이 된다거나 하는 등의 강제 변환은 반감이 생길 수 있지만, <이터널스>의 PC에 대한 비판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태초의 수퍼히어로로 등장함으로써,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이 '고장'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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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cinekoon91.egloos.com/6859718 아주아주 간만에 포스팅+감상문.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보라고 추천할 수 있느냐는....... 아 ... more

덧글

  • IOTA옹 2021/11/11 09:40 # 답글

    저도 재미있게봤습니다!
    물론 영화란게 호불호가 갈릴 수 야 있겠지만 그럴때는 그냥 안봐야겠다 보다는 직접 보고 판단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인터넷에서 여론이 한번 안좋게 흐르면 그건 그냥 똥이야라고 낙인찍어버리는 행태를 그닥 좋아하진 않아서 가급적 흥미가 생겼던 영화는 평가가 안좋아도 보고 판단해보렵니다.

    드루이그가 누군가의 뒤통수를 짱돌로 치긴 했네요.
    테나의 액션에 뭔가 무용스러운 느낌을 받았는데 전 그게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졸리여사님 아직도 분장과 약간의 CG로도 아름다움이 유지되셔서 다행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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