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4 16:00

세버그 극장전 (신작)


한때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실존 배우를 주인공이자 제목으로 삼아 달려가는 영화. 그렇다면 보통은 그 주인공의 생애를 그리며 그 또는 그녀가 느꼈을 부조리들을 주인공 입장에서 보여주게 되지. 그럼 우리는 그 주인공에 공감하게 되는 거고. 하지만 <세버그>는 그러면서도 은근히 딴청이다. 전체적인 상황과 주제의식만 보면, 한 개인의 삶을 파멸 시켜 버린 국가 권력의 부당함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또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인간인지라, 영화를 보는내내 진 세버그가 꼬투리 잡힐 일을 애초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일 아닌가-라는 다소 뾰로통한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부조리는 이해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한 개인이 뭔 짓을 저질렀든 간에 국가 권력이 그런 식으로 개입되면 안 되는 것 역시 맞지. 세버그가 테러 분자였던 것도 아니고, 공산당원이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여튼 한 개인의 삶을 조각조각 해체시키고 부숴버린 국가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이의제기는 영화의 주 메시지로써 제대로 기능한다. 그렇지만 한 번 다시 봐보자. 애초 진 세버그가 하킴 자말의 집으로 찾아가지 않았으면 다 됐던 거였잖아.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과 섹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하단 게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유명한 백인 여성 배우가 그 밤늦은 시간에 모든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는 남성 흑인 인권 운동가 집에 찾아간다? 게다가 그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도 유혹했다? 그것까지 개인의 자유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하여튼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관객들 호감 얻기는 이미 글러먹게 되었다 이거지.

이어지는 모든 묘사들이 다 그렇다. 내적 갈등과 고민은 분명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극중 주인공으로서 진 세버그는 얄팍해 보인다. 유명세로 얻은 부를 가지고 선민 의식을 떨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는 스릴을 즐기고 싶어 죽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카레스크라는 양식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꼭 관객들의 호감을 얻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세버그>의 세버그는 유부남과 밀회를 즐기고도 그의 현재 아내 앞에서 뻔뻔하게 행동하며 반성하는 기색 없이 굴고, 술에 빠지고, 또 그러면서 배우로서 제대로된 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이런 주인공을 어떻게 따라 가겠나. 더불어 한 술 더 떠서, 영화의 이런 묘사를 보고 어찌 진 세버그라는 실존 배우에 대해 우리가 좋게 생각할 수 있겠나. 

영화의 태도 역시 우습다. 국가 권력의 횡포와 언론의 채찍 때문에 삶이 반쯤 박살나버린 실존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종종 쓸데없이 그녀의 가슴골이나 유두 등을 직접적으로 포착해낸다. 아니... 그게 꼭 필요한 묘사였으면 내가 말을 안 하지. 근데 집에서 혼자 술 마시다가 수영장 빠지는 장면인데 거기서 꼭 그렇게 속이 다 비치는 의상을 입혔어야 합니까? 그러면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랑 완전히 반대로 가는 거잖아요. 

짧은 머리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매력 넘치고, 요즘들어 깡다구 있는 역할로만 만나고 있는 빈스 본 역시 반갑다. 그러나 딱 그 뿐. 영화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음. 이건 진 세버그가 불쌍하다고 하는건지, 아니면 정반대로 진 세버그를 까고 싶었던 건지, 그 당시의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 다루고 싶은 건지... 여러모로 어정쩡한 영화. 도청 관련된 묘사로도 <타인의 삶>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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