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5 14:59

핀치 극장전 (신작)


구체적으로 그 이유와 과정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추측하는 것은 가능한, 어쨌거나 그렇게 대충 세상이 망한 이후. 맷 데이먼이 왕위를 계승받기 이전에 먼저 선대 생존왕으로 군림 했던 톰 행크스 만이 이번에도 겨우겨우 혼자 살아남았다. 오존층이 뚫려 필터링 없이 강렬한 태양빛을 마주하고 살아내야하는 재난 속 삶. 톰 행크스의 핀치에게 남은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개 굿이어를 앞으로 쭉 돌봐줄 로봇을 만드는 것. 그렇다, 이 전지구적 재난 속 그의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겨두는 것이다. 

주인공인 핀치도 그렇고 영화 자체도 그렇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 좋다. <나는 전설이다>처럼 거의 주인공 홀로 남은 상황을 다루면서도 그걸 자극적으로 파지도 않고, 또 다른 인간 생존자들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다른 생존자 공격대가 나왔어도 그 묘사는 뻔했겠지. 권총이나 철사 두른 야구배트 든채 또라이 연기하면서 주인공 강아지 줘팰까 말까 간 보는 것으로 억지 서스펜스 만드는. 다행히 영화는 그런 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컬트 교주 분장을 한 또라이 인간 악역이 꼭 직접 등장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타고 있을 자동차 하나의 실루엣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진다. 주인공 무리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선택. 어쩌면 감독의 절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파라다이스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나는 전설이다>나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처럼 말이다. 애초 핀치는 샌프란시스코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과학자답게 그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현재 인류, 그러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천국의 존재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믿고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강아지를 잘 돌봐줄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 딱 그뿐. 그는 그렇게 로봇 제프를 만들고, 제프에게 강아지를 돌보는 법과 더불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전수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의 피조물처럼만 보였던 둘의 관계는, 중반 이후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그것으로 변모한다. 자신이 느꼈던 아버지의 공백, 그 빈 자리를 제프에게 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려하는 핀치. 그 모습에서 책임과 희망을 비롯해 대를 이어나간다는 것의 의미가 얇게나마 느껴졌다. 

톰 행크스 나이 참 많이 들었더라. 왕성한 활동 탓에 최근까지도 그의 모습을 자주 보았건만, 시한부 판정 받은 캐릭터 연기까지 해버리니 그게 더 눈에 많이 들어오네. 언제나 그랬지만 톰 행크스만의 따스한 이미지가 너무 좋다. 그가 영화 속 캐릭터와는 반대로, 아주 오래도록 더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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