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5 15:21

더 언홀리 극장전 (신작)


맨날 싫다고 하면서 공포 영화 또 보네. 자의였든 타의였든, 이것도 저주라면 저주다. 

신과 악마의 존재를 직접 상정하고 보통은 그 추종자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에서 '믿음'이란 언제나 중요한 소재일 수 밖에 없다. 믿음.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의 심리 상태. '믿음'을 해설한 이 긴 한 문장에서 굳이 밑줄을 쳐야한다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이 부분을 난 고를 것이다. 그 '누가 뭐라든 믿는다'란 포인트가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거든. 꼭 종교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세대 갈등도 사실 다 그렇지 않나.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이해도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 근데 그게 '누가 뭐라든 믿는다'란 태도와 만나버리면 끔찍해지는 거지. 그것부터가 벌써 오컬트다. 

그리고 나는 그 '믿음'이란 요소를 이용해 공포를 만드는 방식에 언제나 끌린다. 여기엔 조금의 구분이 필요한데, '우리가 믿는 걸 너도 믿어!'라고 강요하며 전개되는 영화들 말고. 내가 말하는 건, '이것인 줄 알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저것이었다'라는 전개다. 거기서 뒤늦게 오는 공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에이리언>이나 <이벤트 호라이즌>이다. 구조 요청인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경고였어. 그리고 이어지는 좆같은 상황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이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더 언홀리>는 흥미로워 보인다. 성모 마리아의 재림으로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는 소녀. 말 못하는 자들을 말하게 하시고, 걷지 못하던 자들을 걷게 하시며, 믿지 않던 자들을 믿게 하시리라. 그 자체로 기적이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의 연속. 근데 생각해보면, 악마도 악마의 권능이란 게 있잖아. 그걸로 인간들을 속일 수도 있는 거잖아. 한낱 인간들도 사기를 쳐대는데, 이 분야 끝판왕인 악마가 그걸 못할 건 뭐람. 

문제는 영화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어느 정도 예측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게 진짜 신의 뜻인지 아니면 악마의 간계인지 정도는 헷갈리게 연출해놨어야지. 하다못해 세부적인 부분들까지도 그렇다. 뭐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이 없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의 짓거리로만 보임. 게다가 직접적으로 화면 내에 묘사하는 마리아의 재림은... 솔직히 말해 좀 많이 깨더라. 그걸 꼭 넣었어야 했나? 등장하는 순간 웃음부터 빵 터지는데? 더불어 악령의 본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디자인이 너무 구림. 탁하고 튀어나오면 일단 좀 무섭게 느껴져야하는 건데 각기춤 추는 것도 웃기고 그냥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더라. 공포 영화인데 안 무서우면 거기서 벌써 게임 끝난 거 아니냐고.

거짓을 말하던 자가 거짓 기적을 목도한다는 전개라든지 영화의 여러 종교적 맥락들은 흥미롭다. 그럼 뭐해, 일단 무섭질 않은데. 그 이후 전개들이 예측 안 가는 것도 또 아니고. 성모 마리아 상이 피눈물 흘리는 이미지가 좋아 살짝 기대했었는데 여러모로 대실망. 샘 레이미는 정말로 그냥 공포 장르가 좋은 건가 보다. 이런 저런 중하위 퀄리티 공포 영화들 다 제작 맡는 거 보면... 제발, 공포 장르에 대한 이런 아가페적 사랑을 거두어주세요... 좋은 공포 영화를 좀 만들어달라고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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