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 대신 집의 조그마한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화장실도 자주 가고 싶고, 계속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림도 확인하고 싶고. 스페이스바의 유혹이 보통 아니지. 하지만 <더 하더 데이 폴>은 그런 나를 초장부터 확실히 사로잡아 버렸다. 영화의 스타일이 쿠엔틴 타란티노와 가이 리치, 드류 고다드, 에드가 라이트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별다른 설명없이 본론으로 하이패스하는 전개. 자막을 적극적으로 곁들인 편집 스타일. 그리고 화면과 너무 잘 붙는 음악까지. 감독 이름에 제임스 새뮤얼이라. 처음 들어보는 양반이지만 앞으로 꽤 좋아질 것 같은 걸? 그렇게 시작부터 매혹된 영화였건만... 어째 중반 이후부터는 자꾸 스페이스바에 눈길이 가더라. 전반부의 패기와 그 맵시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대쪽같은 오프닝 씬부터 갖가지 잔재주로 멋을 낸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까지. <더 하더 데이 폴>은 초반부터 감독의 개성을 융단폭격 수준으로 드러낸다.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영화적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 영화만의 맛을 선보여내겠다는 야심. 그 야심이 초반부에 많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 뿐이지,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그 개성은 종종 유효하다. 예컨대 짐 벡워스와 체로키 빌이 결투를 벌이려드는 찰나, 그걸 직부감으로 담아내 인물들의 실물보다 그 그림자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든가. 하여튼 필모그래피가 아직 그리 많이 쌓이지 않은 신인 감독으로서는 나름 노력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어느 일이든 간에, 진정한 고수와 장인들은 개성에만 집착하지 않는 법이다. 개성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지구력이다. 그 개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부분에서 제임스 새뮤얼은 아직 장인이 되지 못했다.
특유의 개성으로 초반에 흥미를 몰빵 해놨는데, 그게 조루 마냥 얼마 가지를 못한다. 웨스턴이라는 고전적 장르를 선택했기에 어쩔 수 없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구도는 단순하고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우리가 흔히 웨스턴이란 장르에서 기대하는 것들, 어느정도는 다 있지만 그걸 잘 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특히 액션이 치명적인데, 이 시기 미국의 서부라면 목숨 정도는 어느정도 내놓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악당들이 너무 추풍낙엽에 죽고 싶어 안달이다. 제대로된 엄폐물도 없이 개활지에 서 있던 주인공 파티는 적들의 총알을 손쉽게 피하는데, 반대로 그 적들은 자기 죽여달라 아우성을 치며 은폐 엄폐 따위 개나 주고 달려든다. 클라이막스에 들어서면 이제는 권총도 그냥 물총 같다. 타격감이 강조 되지도 못하고, 웨스턴 특유의 대결 장면들도 모조리 비틀려 있어 그 긴장감 역시 사라진다. 막말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총잡이란 타이틀을 세 번 이상 강조했으면 그 체로키 빌이 과연 얼마나 빠른지 정도는 제대로 보여줬어야지. 물론 어느 정도는 그걸 비틀어댄 것 같긴 하다. 상대보다 반칙 수준으로 먼저 더 빨리 쏴버리면 그야말로 '빠른' 거니까. 비열하기는 해도 빠른 건 인정이란 소리지. 근데 또 그게 아주 잘 강조된 것 같지는 않고.
후까시 겁나 잡던 이드리스 엘바의 메인 악역도 결국 드라마로 증발되는데, 그렇다고 주인공인 냇 러브가 매력있는 것도 아니다. 이 당시를 주름잡던 무법자란 느낌이 전혀 안 듦. 사실 메인 캐릭터들 중 그 어느 하나 매력있는 인물이 없다. 그나마 체로키 빌이 좀 봐 줄만 했는데 별다른 활약없이 광탈이라...
오랜만의 웨스턴이라 기대되는 것도 있었는데 결국 또 실패. 아, <3:10 투 유마> 같은 모던 웨스턴은 이제 다시 나올 수 없는 걸까? 아냐,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아. 지금 생각해보면 <매그니피센트 7>이 차라리 선녀였어. 현대의 웨스턴들이 다 죽을 쑤고 있는 만큼, 결국 이 장르도 고일대로 고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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