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7 16:43

강릉 극장전 (신작)


포스터랑 예고편 보고 드는 생각. '이거 2000년대 초반 영화인가?' "내가 너무 빨리 왔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강릉>이 단순히 조폭을 주인공으로한 범죄 누아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캐스팅부터가 뭔가 올드하잖나. 장혁은 그렇다쳐도, 유오성이라니. 조연이나 카메오 아닌 명실공히 주연으로서는 꽤 오랜만이다. 당장 기억나는 최근작은 <안시성>. 그나마 그 영화에서도 특별출연의 느낌이었지. 하지만 과연 유오성이라는 이름을 듣고 사람들이 <안시성>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당연히 아니지. 높은 확률로 <친구>가 먼저겠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강릉>은 <친구>와 동년배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영화가 캐스팅만 올드하다는 건 물론 아님. 영화의 감성도 존나 오래된 거다. <강릉>이 조폭을 다루는 태도는 윤종빈이나 바다건너 마틴 스콜세지와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그 둘은 영화를 통해 범죄자들 사이에 의리나 우정 따위가 어디 있냐고 현실적으로 빈정 거리던 사람들이었지. 근데 <강릉>은 거기서 딱 반대다. <강릉>의 조폭들은 그 사이에 형제애가 있고 깊은 서열이 있으며, 무엇보다 지켜야할 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심지어 때때로는 지역구를 수호하는 일종의 자경단처럼 그려지기도 함. 한마디로, 1990년대부터 2000대 초반까지 한국의 조폭 장르를 지배했던 이른바 '낭만'이 짙게 서려있는 영화라는 거.

유오성의 길석은 그런 낭만의 화신처럼 묘사된다. 그는 조금 다툴지언정 의형제를 맺은 선후배들과 항상 힘을 나누고, 아래 부하들에게는 언제나 인정 넘치며, 투박하되 귀여운 강원도 사투리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야말로 한국 사람들의 고전적 가치관을 똘똘 뭉쳐 만든 낭만 조폭. 그러나 이런 길석을 혼란으로 내모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혁의 민석이다. 강릉은 커녕 강원도 출신도 아닌, 그야말로 외부로부터 온 침입자. 민석에게는 룰이 없다. 대화가 안 통한다 싶으면 칼부터 찌르고 보는 거다. 고로 낭만도 없다. 정을 주었나 싶었던 여자는 섹스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희생양으로 소비하고 만다. 좋게 좋게 가자며 손을 잡으려 들었던 길석에게는 그딴 거 필요 없다고 하며 자동차로 그냥 박아버리고. 룰도 낭만도 없는 민석을, 길석이 이해할 수 있을리 없다. 이런 부분에서는 간혹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다크 나이트>의 테마가 떠오르곤 한다.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상대를 대면 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혼돈. 물론 영화적 만듦새는 그 두 영화와 비교하기 무안하지만. 

경찰들의 마약유통범 미행 작전 장면은 너무 허접해서 웃기고, 그 이외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몇몇 배우들의 괴상한 연기 역시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유오성의 연기력은 논외로 해도 주인공 존재감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도, 아주 나쁜 영화는 아니라는 게 내 느낌이다. 물론 좋은 영화는 아니지. 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했다-라는 생각. 이런 구태의연하고 뻔뻔한 기획을 한 해에 적어도 대여섯편씩은 마주치게 된다. 그런 영화들 대부분은 다 대충 찍었다는 인상이 강하고. 연출에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이다. 그냥 대화 장면이니까 이 인물 한 컷, 저 인물 한 컷. 그리고 이런 셋팅의 반복. 그에 비해 <강릉>에는 적어도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조명 연출과 촬영 등, 여전히 뻔하고 올드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해보려고는 했다는 거지. 

재밌는 영화는 아니고 좋은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첫 인상에 비해서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영화. 무엇보다 장혁의 말투가 너무 웃겨서 좋았다. 내가 장혁 은근히 좋아함. 나한테는 길티 플레져 같은 배우.


뱀발 - 여성 캐릭터들은 그냥 앗싸리 다 빼버리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아마 시나리오 초기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여성 관객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만한 캐릭터가 없다는 제작사의 의견에 뒤늦게 억지로 추가하지 않았을까.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지금처럼 대충 하고 치워버릴 거면 아예 하지를 말든가. 이채영이 연기한 캐릭터는 그렇다쳐도, 한선화가 연기한 캐릭터는 갑자기 어디간 거냐. 딱 두 씬 정도 나오고 증발. 이게 생색내기용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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