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한 대 치고 싶은 영화는 오랜만이다. 오랜만인데 안 반갑다.
디어 스포일러!
거짓말쟁이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들은 많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라이어 라이어>. 그리고 그걸 한국식으로 번안한 <정직한 후보> 역시 마찬가지였지. 하여튼, 거짓말을 일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려면 영화가 그 주인공을 최대한 열심히 호감형으로 보좌해야한다. 거짓말이라는 것 자체가 벌써부터 비호감 사는 행동이니, 그외 다른 부분들로 관객들에게 주인공에 대한 호감을 잔뜩 심어줘야 한단 소리다. <라이어 라이어>의 짐 캐리처럼 아예 만능 코미디로 능수능란하게 넘어가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정직한 후보>처럼 애초부터 뻔뻔한 인물로 가든가... 그러나 <디어 에반 핸슨>은 주인공 에반 핸슨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호감 거짓말쟁이 상태로 방치한다.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결국엔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나버리는 것. 그게 바로 거짓말의 속성이다. 거기엔 별다른 불만이 없다. 사소한 오해와 잠깐의 동경으로 거짓말이 시작된 것 자체는 이해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에반 핸슨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거짓말을 일삼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형식을 벗삼아 그 모든 걸 그냥 퉁쳐버리고, 심지어는 후반부 자기 고백의 순간에서 조차 그 모든 일에 대한 변명들을 노랫말로 희석시킨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장면 만큼은 그냥 일반적인 대사로 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사무치게 반성하고 또 진심으로 사죄해야할 장면에서 에반 핸슨은 또 노래를 부른다. '미안해요, 하지만 좋았어요~'라는 맥락으로 거짓말의 피해자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완성해주는 아들 향한 에반 핸슨 어머니의 사모곡. 제아무리 영화라지만 밥먹듯이 한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준 아들래미에게 '넌 내 가장 큰 선물이야~'로 응수하는 어머니라니. 아니, 저기요. 이거 가정 교육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니요?
덩달아 학생회장인 아리나는 왜 갑자기 자신의 병명을 커밍아웃하는가? 불안장애에 거짓말쟁이라는 요소를 함께 갖고 있는 주인공 한 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던 것일까? 영화는 갑자기 복선도 없던 아리나의 커밍아웃을 통해 실은 우리 모두 힘들다-는 뉘앙스를 설파하기에 이른다.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우리가 곁에 있어줄게'라고만 해도 모자랄 판인데, 영화는 꼰대 마냥 '너 힘들어? 실은 나도 힘들어. 인생 다 그런 거야'라는 태도로 응수한다. 이쯤 되면 영화가 주인공을 케어해줄 여력도 생각도 없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
뮤지컬 영화로써도 문제점이 심각하다 보는데, 다른 걸 다 떠나서 영화를 보고난 후 흥얼거리게 되는 뮤지컬 넘버가 단 한 곡도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곡 전체의 분위기가 다 비슷비슷하다. 중간에 에반 핸슨이 상상을 통해 코너와 우정을 나누는 뮤지컬 넘버가 한 곡 있는데, 그 곡만 전체 트랙리스트에서 혼자 분위기가 다르다. 그 곡만 명랑함. 그러다보니 곡의 퀄리티와 호오를 떠나 딱 그 넘버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다 엇비슷하게 느껴져 구분이 안 됨. 막말로 영화에 나오는 모든 뮤지컬 넘버들이 다 우울하고 지지부진한 느낌.
정말로 진짜 오랜만에, 등장인물들의 80% 이상이 다 비호감인 영화. 주인공은 거짓말쟁이인데다 하는 짓 보면 진짜 불안장애 환자인지도 의심 갈 정도이고, 그 엄마는 일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제식구 감싸기의 화신이며, 자살한 코너는 생전 모습만 보면 그냥 돌아이, 또 그 엄마는 죽은 자식 친구에게 부담 팍팍 주고 집착, 학생회장이란 작자는 올리지말라는 거 SNS에 끄적였다가 인실좆. 보는내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원작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나게 흥행 중이라 하던데, 대체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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