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 13:26

장르만 로맨스 극장전 (신작)


감정과 관계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우정욕을 느꼈다고 해서 무조건 친구가 될 수는 없듯이,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우정보다 더하지. 마음 속에 사랑이란 감정이 싹 텄다 해서 그게 무조건 연인이라는 관계로 발전 되지는 않으니. 때때로 사랑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리고 그 점이, 우리가 인생을 어렵다 느끼게끔 만든다. 

바람나 이혼 했으면서 또 전처와 침대에서 뒹굴뻔한 유명 작가, 그리고 그 전처를 사랑하게 된 그의 오래된 친구, 콩가루 부모 아래에서 사랑에 대해 키워가던 불신을 옆집 아줌마 때문에 뒤집어 생각하게 된 아들, 여기에 유명 작가 주인공을 사랑하게 된 동성애자 제자까지. 전체적인 맥락과 캐릭터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그물망만 놓고 보았을 때, <장르만 로맨스>는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의 한 조각쯤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적 분위기만 끌고 가져왔을 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보다 진지한 접근을 시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주 신선하고 놀라운 접근을 행하는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저 로맨틱 코미디일 뿐이라 치부만 하기엔 영화가 또 진지하단 말이지. 

그 옛날 아렌델의 공주 안나는 옆나라의 수상한 왕자와 만난지 불과 하루만에 사랑을 느끼곤 노래했다. "사랑은 열린 문"이라고. 하지만 그 노랫말은 반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사랑말고 연애는 '열린 문'이어야 한다. 나와 그 문 건너편에 있는 상대 모두가 동일한 조건 하에 합의해, 모두 함께 그 문을 열어야 한다. 문은 안으로도 통하고 밖으로도 통해야한다. 내가 밀어도, 상대가 밀어도, 내가 당겨도, 상대가 당겨도. 어쨌거나 함께 열어야 한다. 하지만 연애말고 사랑은 때때로 한쪽으로만 열리는 외여닫이문 같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사랑은 하더라도 그 무게 만큼은 조금씩 다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 등으로 표현되는 이른바 사랑의 결실들은 대단하고 또 소중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똑같이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르만 로맨스>는 그런 외여닫이문 바깥쪽에 우두커니 서서, 결국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인물들의 아리고 시린 모습들을 때로는 키득거리며, 또 때로는 눈물 지으며 잘 담아낸다. 류승룡의 다부지게 귀여운 모습과 김희원의 상큼하게 주눅든 모습에 킬킬거리다가도, 이내 성유빈이 침대에 엎드린채로 엉엉 소리내어 울 때와 무진성의 초췌한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면 사랑이란 것이 대체 뭐길래 우리를 이리도 힘들게 만드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순수하다못해 유치하기 까지한 고백으로 사랑의 결실을 추수 하려했던 고등학생 성경에게, 현실 속 세상이 돌려준 건 냉혹한 주먹 한 방과 성경을 피해 숨어버린 사랑의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유럽 어딘가로 숨어든 유진의 얼굴에 결국 웃음꽃을 피게 만든 건 오래도록 존경해오고 또 사모해왔던 누군가의 당도였다. 아, 사랑은 왜 이리도 아픈가. 그리고 왜 이리도 기쁜가. 사랑은 우리에게 재앙인 동시에 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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