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 15:14

카우보이 비밥_SE01 연속극


그 유명세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으나, 정작 볼 마음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던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에 네오 느와르 활극이라니, 장르만 두고 보면 내게도 필견의 작품이었으나 뭔가 감상의 활시위를 당길 방아쇠가 그동안 딱히 없었다. 그런데 그 방아쇠 역할을 훗날 넷플릭스가 해줄줄 누가 알았으랴.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무래도 이 글은 소신발언의 향연이 될 것 같다. 내 주위 사람들 중 이 작품에 혹평을 날린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게 된 측면도 있었고. 하지만 정작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작품은, '힘들다'란 감상 밖에 안 들었다. 나 이거 왜 이렇게 재미없었지? 나만 그런 건가? 그런데 그게 <카우보이 비밥> 자체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객관적으로 말해 연출은 멋지고 캐릭터들 역시 매력 넘치는 건 사실이거든. 그러니까 이 시리즈에 대한 내 비관적 감상은 이 작품 자체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재패니메이션 전체가 가진 컨벤션의 탓이 크다. 재패니메이션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탄식만을 부르는 존재가 되어버렸거든. 

그러니까 그런 거다. <카우보이 비밥>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프로덕션 디자인, 화풍 등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인물들이 소위 말해 분위기 잡는 것, 그걸 못 견디겠다.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고 또 낭만이라는 거 알고, 또 그게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분위기라는 것 역시도 잘 알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에 올라타기가 어렵다. 싸움 중에 한껏 가오잡으며 허세와 낭만을 지껄이는 것도 못 참겠고, 웬 미친놈 마냥 어린 꼬맹이가 팔 흐느적 대며 또라이짓 하는 것 역시 버티기가 힘들다. 진짜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 제외하고는 이제 다 힘들어서 보다가 지침.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각 인물들의 조합과 팀플레이가 거의 전무한 것처럼 보인다는 게 가장 맘에 안 든다. 물론 그들 사이의 의리나 우정, 있지. 근데 그게 너무 담백하다. 막말로 스파이크와 제트, 페이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서로를 최소한도 내에서 걱정하긴 하지만 막말로 그들끼리 가족처럼 꽁냥 거리는 것도 별로 없고, 액션에서 역시 각자 따로 논다. '카우보이 스파이크'이 아니라 '카우보이 비밥'이라는 제목을 내걸었으면 비밥 호의 멤버들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냥 서로를 본체 만체하는 듯한 느낌이다. 

몇몇 인물들은 서사를 제대로 쌓을 새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갑자기 떠나간다. 비셔스의 아래에서 일하는 캐릭터들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고, 그 범죄 조직은 제대로된 설명도 없이 피상적으로만 다뤄져 위협의 현실감이 잘 안 느껴진다. 아니, 지금 조연들 이야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주인공 4인방 각자의 이야기에 제대로된 결말도 안 내주는 것 같더구만. 누가보면 다음 시즌 있는 줄 알겠음. 

나쁜 작품이라거나 재미없는 작품이라거나, 뭐 그렇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고, 때때로 연출이나 화풍이 기가 막힌 타이밍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 취향이 재패니메이션을 거부한다. 그냥 재패니메이션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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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AIN 2021/12/17 08:26 # 답글

    리얼타임 때에도 흘러간 옛스런 똥폼으로 구렸고 지금 봐도 솔직히 구린 건데, 한국에서만 과대평가 받는 물건 중 하나 아닐까 합니다. 이것과 이 부류의 악영향으로 망가진 국산 애니들 원X풀 데ㅁ즈 같은 사례만 봐도 한국에서만 한심하게 빨아주는 물건이죠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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