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9 14:10

라스트 나잇 인 소호 극장전 (신작)


에드가 라이트를 좋아하지만 호러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볼까 말까 조금 고민했었다. 그러다 '근데 에드가 라이트가 무서워 봤자 뭐 얼마나 무섭겠어?'라는 호기로운객기 생각이 들어 그냥 관람. 그리고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 에드가 라이트는 남 놀래키고 무섭게 만드는 것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다리오 아르젠토나 과거 한 끗 발씩 했던 고전 호러 영화들의 몇몇 요소들을 차용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사실 에드가 라이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반추해보면 그게 또 맞는 것이기도 하고. 


스포일러 인 소호!


그렇기 때문에 호러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100% 실망할 법도 하다. 작가주의적 관점으로 본다면 에드가 라이트 작품 세계의 외연을 넓힌 일종의 영화적 진군 쯤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취향을 적절히 섞어 안배하고, 고전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가 가득하며, 때때로 메타 유머를 곁들이는데, 여기에 타고난 리듬의 촬영과 편집으로 관객들을 길들이는. 그런 에드가 라이트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했다면 이번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그래도 골라잡은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뜨거운 녀석들>이나 <스콧 필그림 vs 월드> 정도의 키치함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방향성은 조금 다를지라도 영화적 기조는 그의 바로 전작 <베이비 드라이버>와 더 유사하다. 물론 <베이비 드라이버>와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각각 하이스트 액션물과 심리 호러로 정반대의 길을 걷지.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라는 이름을 걸고 보면, 두 작품 모두 그만의 테이스트를 장착하되 각기 다른 장르로 뻗어나가려는 감독의 확장성에 대한 욕망이 보이거든.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일정 부분 만족스럽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영화적 문법이 현란하다. 근데 그게 마냥 산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게 극중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지니까. 꿈을 통해 영사되는 과거는 1960년대 런던의 뒷골목 세계를 다루고 있다. 또 그와 대비되는 현재 역시 다소 정신없는 2020년대의 런던이고. 여기에 그 두 세계 사이에서 주인공까지 혼란을 느끼는 상황이니, 에드가 라이트의 현란한 리듬은 극중 분위기에 잘 녹아든다. 아니, 오히려 증폭 시킨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감독 스스로도 토마신 맥킨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 맷 스미스가 함께 춤을 추는 첫 댄스 장면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말했던데 과연 그럴 만하다. 여기에 다리오 아르젠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결말부 화재 장면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답고. 

문제는 장르적 재미가 부재하단 것이다. 이건 어쨌든 호러 영화다. 관객이 에드가 라이트라는 이름을 들어봤든 혹은 들어보지 못했든, 어쨌거나 그들은 이 영화가 무섭기를 원한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호러 영화임에도 무섭지 않다. 장르적으로는 실패다. 몇몇 점프 스케어나 영화 속 핵심으로 등장 하는 살인 장면의 묘사는 연출적으로 훌륭하나, 공포의 총합으로만 보자면 엄연히 실패. 여기에 모든 미스테리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반전 역시 설득력 없고. 

어쨌거나 주인공이 보던 과거의 망령은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었다는 게 이 반전의 결론이잖아.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단순히 그 할머니의 집에서 하숙만 하면 누구나 꿈을 통해 과거를 볼 수 있는 거야? 물론 그 집 곳곳에 은닉된 피해자 시체의 영혼들이 그를 가능케 만들었단 설명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이다. 하여튼! 60년대를 살던 샌디는 자신의 포주를 비롯해 여러 성구매 남성들을 죽였다. 성매매랑 포주짓? 당연히 불법이지.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샌디는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까 영화는 현재 시점의 샌디를 명백한 악역으로 규정하되, 그녀 또한 피해자였다는 프레임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근데 이게 말이 되냐? 그냥 죽은 남자들이랑 샌디 다 모두 까기로 갔어야지. <화차>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그런 건조한 길을 선택했다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샌디를 동정하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근데 지금 버전의 결말은 샌디에게 자꾸 일종의 여지를 준다. 그녀의 죽음이 낭만적인 것쯤으로 묘사된다. 거기서 소격 효과가 발생하고. 그러다보니 또 성폭력 행사 했던 남자들을 구원하는 서사쯤으로 읽히게도 되잖아. 

연출적, 테크닉적으로는 볼거리가 충만하지만 장르적 재미는 부재한 이율배반적 영화. 근데 상술한 비판점들에 대해 에드가 라이트가 다 반박할 수 있다쳐도, 에필로그는 확실히 그냥 빼버리는 게 나았을 거라고 본다. 그냥 앰뷸런스 장면에서 영화의 막을 내리면 안 됐던 거야? 지금은 급 가족 영화 된 뒤 끝나는 모양새라 여러모로 모양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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