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9 15:04

엔칸토 - 마법의 세계 극장전 (신작)


떠올려보자. 가족 친지 여러분이 다 모인 명절날, 잘난체 하고 또 실제로 잘난 친척과 사촌들 사이에 멍하니 앉아있는 평범한 당신을. 잘난 그들끼리는 명문대 입학과 대기업 입사, 결혼 등을 서로 축하하고 있다. 그 때 그걸 멀찍이서 보고만 있는 평범한 나, 그리고 평범한 당신들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엔칸토 - 마법의 세계>는 그러한 현실적 공포를 잘 묘사 해낸다. 그런데 <엔칸토>가 무섭게 한 벌 더 나아가는 지점은, 그 친지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오늘부터 우리 모두 대가족을 이뤄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갈 거라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한 공포가 과연 우리네 삶에 또 있을까.


스포의 세계!


나는 언제나 스스로가 부족하다 생각해 그 안으로 무너져버린, 그러한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려왔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미라벨 역시 마찬가지다. 혈통을 통해 기적을 부여받아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니게 된 마드리갈 가족. 때문에 그들에게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그만의 초능력을 부여받는 행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그 중요한 행사에서, 결국 아무 기적도 부여받지 못했던 미라벨. 그 이후로 미라벨은 가족들 사이에서 일종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아니, 차라리 투명인간 취급만 하면 낫지. 미라벨에게 붙는 꼬리표는 언제나 동정의 그것이었다. 그 어떠한 초능력도, 그 어떠한 기적도 선물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서러운데, 이제는 마드리갈 가족 전체가 겪는 위기마저 모두 미라벨 탓이라고 한다. 이러니까 사람이 삐뚤어지겠어, 안 삐뚤어지겠어?

하지만 디즈니 주인공은 디즈니 주인공이다. 미라벨은 삐뚤어지기 보다, 이 이미 부여된 예언을 타파하고 가족을 구하는 데에 자신의 소명을 다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멋진 영상미와 신나는 뮤지컬 넘버들. 단지 그뿐이었다면 그냥 저냥 평범한 작품들 중 하나로 남았겠지만... <엔칸토>가 인상적인 건 추격도, 악당도 없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드라마라는 점이다. <엔칸토>는 주요 안타고니스트를 이 마드리갈 가족 외부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고니스트는 미라벨의 할머니로 가족 내부에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또 할머니가 악한 마음씨를 가진 전형적인 마녀 타입의 악당도 아니었다. <엔칸토>의 핵심 주제는 가족 구성원, 세대 간의 갈등이고 또 그로부터 연유한 기대와 부담이다. 이야기는 집으로 시작해 집에서 끝나고, 마법의 세계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외부인 따위는 일체 묘사되지 않는다. 가족의 갈등과 위기는 집 안에서, 가족들끼리의 소통을 통해 해결된다. 최소한의 재미와 스릴을 표출하기 위해 몇몇 단순한 추격씬과 액션씬이 있지만 딱 그 뿐. 영화는 그저 소박할 뿐이다. 그리고 그래서 더 진솔하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이다보니 관람 등급에 대한 허들도 낮을 것이라, 진짜로 가족 친지들 다 모인 명절날 보면 꽤 괜찮을 작품이다. 물론 극중 마드리갈 가족 내의 갈등들 때문에 TV 바깥의 실제 가족들 역시 갑분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형제 자매들 중 첫째가 갖는 부담감과 뚜렷한 성취가 없어보여 무시받기 일쑤이거나 또는 항상 어린 아이 취급 받는 막내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영화. 소소한 규모 덕에 <겨울왕국> 같은 비주얼적 쇼크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 덕에 훨씬 더 따뜻하고 더 귀여웠던 것 같다. 

뱀발 - 그래도 고자질쟁이 소머즈는 한 대 때리고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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