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14:18

스탠바이, 웬디, 2017 대여점 (구작)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녀가 <스타 트렉> 신작 시나리오 공모전에 자기 글을 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는 이야기. 소녀 웬디의 그 대장정과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 트렉> 시리즈의 정신은 진진하게 공명한다. 웬디가 <스타 트렉> 말고 <스타워즈>를 더 좋아했다면, 아마 그녀의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좋아해 마지않는 시리즈지만, 결국 <스타워즈>의 핵심은 그거잖아. 선택된 영웅이 우주를 구한다는 거. <라스트 제다이>가 그에 살짝 반기를 들기는 했었지만, 곧바로 뒤따라 나온 막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의해 뒷통수 맞고 부인되어 쪼그라들었으니... 하여튼. 그에 비해 <스타 트렉>은 어떠한가. 물론 <스타 트렉> 역시 기본적인 영웅 서사를 장착한 시리즈인 건 맞지만, 그럼에도 그 핵심 정신은 '뉴 프론티어' 아닌가. 넓은 세계를 용감하게 탐험 하라는 정신. 웬디는 그에 반응한다. 그녀에게는 이 세상이 곧 미지의 우주나 다름없으니, <스타 트렉>으로한 정신 무장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깊은 <스타 트렉>이란 콘텐츠까지 끌고 들어온 것치고는, 웬디의 여정이 뭐랄까 좀 뻣뻣하고 소박하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대체 어떤 스펙터클을 바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나도 뭐 대단한 걸 바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소박한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는 헐거운 개연성에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걸 어쩌란 말이냐... 웬디는 혼자 집을 나서지만 조용히 자신을 따라온 강아지 피트를 결국 껴안은채 다시 출발한다. 근데 여정 내내 웬디와 피트의 케미스트리가 강조되는 장면이 없다. 각본에 있어서, 피트는 그저 웬디를 고속버스에서 내리게 만드는 역할만을 위해 설정되어 있는 강아지 캐릭터다. 고속버스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곧바로 로스앤젤리스 가버리면 이야기가 너무 쉽잖아. 딱 그걸 방해하기 위한 역할로 피트가 설정되어 있는 것. 심지어 중반 이후에는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도 없이 웬디와 피트는 헤어지게 되고...

하여튼 그런 게 너무 많다. 졸음 운전으로 교통 사고 나는 게 그 절정. 이쯤되면 전 우주가 웬디의 LA행을 막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 지경. 여기에 웬디를 제외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설프게 서 있는 주변 캐릭터들도 안습. 막말로 토니 콜렛은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정현종 시인이 썼었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스탠바이, 웬디>는 사람을 섬 대신 행성으로 치환한다. 이 사회와 세상이라는 우주 속,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항행 중인 각기다른 행성들. 웬디는 USS 엔터프라이즈 호가 되어 그 우주를 가로지른다. 이토록 멋진 상황 설정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 개연성에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 


뱀발 - 웬디의 언니로 나오는 앨리스 이브는 <스타 트렉 - 다크니스>에서 캐롤 마커스 역할을 연기한 적이 있다. <스탠바이, 웬디> 속 세계관에도 과연 <스타 트렉 - 다크니스>가 존재할까? 

덧글

  • 잠본이 2021/12/22 13:48 # 답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통해 MCU에도 데이빗 핫셀호프가 존재한다는 걸 보고는
    '그럼 저 세계엔 핫셀호프가 연기한 tv영화판 닉퓨리도 존재할까'라는 궁금증이 피어올랐죠(...)
  • CINEKOON 2021/12/29 12:43 #

    http://cinekoon91.egloos.com/6130863
    사실 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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