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15:53

베네데타 극장전 (신작)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은 차치하고, 영화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로 신이 실존해 베네데타를 선택했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이 모든 게 베네데타의 살신성인 거대한 뻥이었다는 건가? 근데 그냥 그렇게 치부 하기에는 어릴 적 그녀가 겪었던 성모 마리아 상 사건에서 너무 신의 개입이 느껴지잖아. 하지만 또 그 모든 걸 신의 은총으로 넘겨짚기에는 베네데타의 행동들에 수상한 구석이 많고... 결국 내가 내린 나만의 결론은 그거다. 무신론자인 내가 보기에 실제로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 만큼은 신이 실존한다. 그리고 베네데타는 그 신을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너무 진실 되게 믿기에, 그녀는 페샤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진심으로 믿는 자였기에, 베네데타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구원하려 했다. ......이게 내 결론이다. 

그러니까 자기 딴에는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는 거다. 그게 객관적으로 옳다는 소리는 아니고,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진정 믿는 자의 쇼맨십이었던 거지. 흑사병으로 부터 페샤와 그 안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수녀원에서 벌이는 정치 싸움으로 자기 자리도 좀 만들고. 신의 신부와 인간 정체성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이랄까? 

최근 넷플릭스의 <지옥>이 보여주었듯, 결국 종교는 인간의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신이 실존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게 기독교의 신이든, 이슬람교의 신이든, 힌두교의 신이든 간에. 하지만 어찌되었건 '종교'는 인간들이 정립하고 정리하며, 또 관리한다. 하늘 위에 신이 실존한다해도, 그 아래 땅의 교회와 신도들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몫. <베네데타> 속 종교는 때론 썩은 모습을, 또 때때론 빛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잘 묘사 해낸다. 샬롯 램플링의 원장 수녀는 자꾸 돈을 따지며 세속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후반부의 교황 대리인 역시도 첫 등장에서부터 여러모로 탐욕적이지 않나. 베네데타가 신의 계시를 받고 또 보는 동안, 그들은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 종교를 운영한다. 

그러나 그 인간만의 감정을 걸출하게 보여주는 것 역시 그들이다. 원장 수녀는 자신의 딸이 죽자 분노와 절망을 내뿜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투와 모략의 과정들. 웃긴 게, 원장 수녀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정작 그녀의 믿음은 관성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거. 베네데타처럼 진실되고 강렬하게 신을 믿지는 않았다는 거. 하지만 마지막엔 흑사병 창궐을 막기 위해 스스로 불길에 몸을 던지지 않나. 이게 성녀가 아니면 무어란 말이냐. 

신은 실존할 수 있고, 또 그 자체로 자애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여튼 땅 위에서 그 교리를 설파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또 다양한 욕망들을 품고 있는 육신 안의 존재들이다. 어쩔 수 없는 그 간극을, 폴 버호벤의 악취미적 테이스트로 풀어낸 영화. 그런데 솔직히, 이런 소재들 외에 그냥 그 묘사가 너무 웃기고 넋 빠져서 그 쪽이 더 흥미로웠음. 필모그래피 후반에 들어설 수록 <블랙 북>이나 <엘르> 같은 영화들로 선회 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로보캅>과 <스타쉽트루퍼스>의 감독 아니었던가. 결국 예수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초반에는 예수처럼 보였던 흰 로브의 남자가 말을 타고 달려들어와 장검으로 산적들 뚝배기를 깨는 장면이 초기 폴 버호벤의 정수 같아 아찔해졌다. 


뱀발 - <장고 - 분노의 추적자> 개봉 당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SNL에서 '지저스 언크로스드'라는 디지털 숏 찍었었지. 그 묘사가 <베네데타>의 장검 예수와 비슷해 웃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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