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7 13:15

언포기버블 극장전 (신작)


그동안 살아왔던 생의 절반이라 할 수 있을 20여년의 세월. 그 긴 세월을 감옥 안에 개어두고 나온 여자. 오랜만의 사회 복귀인 만큼, 그녀 앞에 놓여진 생의 임무들은 직설적이고 때론 가혹하기 까지 하다. 전과가 있으니 원하던 직업 구해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렵고, 나름 얻은 잠자리는 불편한 데다 불안하다. 여기에 한꺼풀 더 벗겨야만 드러날 과거의 진실. 과연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스포기버블!


결론부터 말하면 그 과거의 미스테리가 잘 끌어가던 영화 전체를 붙잡고 추락한 모양새다. 중반부까지는, 경찰 살해 전과가 있는 여성으로서 주인공의 험난한 세상살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재미'라고 표현하니 좀 그렇지만, 꽤 집중이 잘 되었고 또 영화의 호소력도 나름 높았다는 말. 갈데없이 내몰린 인물의 서성거림을 보며 드는 측은지심과, 20여년의 세월동안 눈에 띄게 바뀌어버린 현대 사회와 과거 갭 사이에서 종종 멈칫하는 인물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후회의 번뇌. 그리고 그 모든 걸 내적, 외적으로 발산하는 산드라 블록의 연기까지. 영화는 꽤 괜찮은 인간 드라마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거 미스테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부터, 영화는 특유의 거칠고 생생한 맛에서 뻔한 가공품 맛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일단, 그 미스테리에 대한 진실이라는 게 별로 재미가 없을 뿐더러 너무 예측가능한 형태의 무엇이었다. 아, 알고보니 이 여자가 진짜 범인이 아니고 그 어린 여동생이 다 벌인 짓이었다고요? 근데 언니는 동생의 그런 실수를 덮어주고자 대신 감옥 생활을 견뎌냈다고요?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그 둘이 모녀 관계가 아니라는 것 뿐, 이러한 설정 자체는 이미 숱한 영화와 드라마들에서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모성이나 가족애 쯤으로 포장 되면서 말이지. 차라리 주인공에게 그 어떠한 면죄부나 변명의 여지도 주지않고 그냥 전과자 취급하며 진행 했더라면 더 마음이 갔을 것. 

이 미스테리적 요소는 조금의 장르 양념까지 끌고 들어온다. 과거에 아버지를 주인공에 의해 잃었다 생각한 두 아들의 이야기가 그것. 엔딩 크레딧을 보니 원작이 되는 드라마가 있던 것 같은데, 최소 6부작 정도의 미니 시리즈 호흡이라면 이 모든 걸 담아내기 용이 했을 테다. 그러나 이건 두 시간짜리 영화 아닌가. 주인공과 그 동생 사이 사건을 따라가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두 형제의 이야기가 꼬렛마냥 갑툭튀 출몰. 그래...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한다고 쳐... 근데 두 형제 사이 불륜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건데...? 그게 이 메인 스토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지금은 그저 동생이 형과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이에 빡쳐서 주인공 조지려 든다는 것 밖에 안 되잖아. 그냥 분풀이 대상이 된거라고, 주인공이. 드라마 포맷이었다면 두 형제 캐릭터도 각각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깊게 부여 받았겠지만...

주인공 한 사람 이야기만 따라가도 인간 드라마로써 나쁘지 않았을 텐데, 여기에 너무 여러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다. 오래 전 헤어진 여동생과 그에 얽힌 미스테리, 그리고 그 여동생의 양부모 이야기, 주인공을 도와주는 변호사와 그 아내 이야기, 일터에서 만난 새 남자친구 이야기, 주인공에게 복수하려하는 두 형제 이야기, 그리고 그 형제 사이 외도 이야기까지. 딱 봐도 드라마 포맷에 더 잘 어울렸을 플롯 구성. 이걸 굳이 2시간짜리 영화로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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