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딸을 돌연사로 잃은 부부. 남편은 버티지 못해 자살 시도 했다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그렇게 홀로 남은 아내.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텨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정신을 이어나가려는 그녀를 두고, 남편은 독하다 말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가 그런 상실감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까스로 버티고 견디는 중인 그녀. 그를 위해 마당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아내는 번식기 알을 품고 지키는 찌르레기와 조우하게 된다.
제목이 <릴리와 찌르레기>인데 주 내용이 저래. 그럼 으레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그저 연명중인 여자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거나 또는 반대되는 찌르레기 한 마리와 만나 우정 아닌 우정을 쌓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따뜻한 이야기-쯤을 기대하게 되지. 하지만 <릴리와 찌르레기>는 그를 곧이 곧대로 전개해주진 않는다. 우정을 쌓았다기엔 릴리와 찌르레기 사이 관계가 후반부 들어서야 따스하게 급 전개되고, 또 그를 뒷받침 해주기 위한 수의사이자 정신과 의사 캐릭터의 존재는 진짜 조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묘사 되거든.
그러니까, 사실상 그 찌르레기는 주인공 릴리의 남편인 잭을 상징하는 존재였을 뿐인 거다. 영화 내에서도 릴리와 찌르레기의 관계보다, 오히려 릴리와 잭 사이 관계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좀 더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우울증이란 병명과 증상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그걸 다 감안한다 하더라도 잭의 사고와 행동은 진짜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관객으로서 주인공인 릴리의 상태에 좀 더 이입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 하지만 진짜로 잭은 좀 무책임한 인물이다. 본인의 슬픈 고백으로 어릴 때부터 심약한 상태였다는 것이 암시 되기는 함. 그래도 자기 혼자 딸을 잃었나? 오히려 그 딸을 9개월간 뱃속에 품고 있던 것은 아내인 릴리 아닌가. 릴리의 상실감도 그 못지 않게 클텐데, 잭은 딱 자기 몫의 그것만 생각하느라 정작 그녀를 챙기지 못한다. 물론... 우울증이라고 하니까 이해는 한다고... 근데 그게 이해와 공감은 조금 다르잖아... 이해는 되는데 공감은 안 돼... 미안합니다, 잭...
어쨌거나 영화엔 안온한 온기가 감돌고, 막가파 불도저 몸개그로 일관하는 멜리사 멕카시만 보다 이렇게 오랜만에 훈훈한 이미지의 그녀를 보게 되니 좀 재밌는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 포인트는 바로 감독. 시어도어 멜피는 이전에 <히든 피겨스>를 만든 이력이 있거든. 다만 <히든 피겨스>와 비교하기엔 영화의 구성이나 짜임새가 좀 헐거운 게 단점...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릴리와 찌르레기>는 시어도어 멜피의 따뜻한 뒷걸음질이라고. 그냥저냥 따스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건 맞는데, 감독의 전작 수준을 기대하고 보면 그것보다는 그다지.
뱀발 - 못본 사이에 티모시 올리펀트 왜 이렇게 늙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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