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1 13:40

매트릭스 - 리로디드, 2003 대여점 (구작)


1999년의 <매트릭스>는 예컨대 공방일체 같은 영화였다. 두꺼운 이두박근에 깊은 사유까지 장착한. SF와 액션 장르로써의 재미도 놓치지 않았는데 거기다 여러 생각해볼 거리들까지 던져주는 정방형의 영화였다고. 그러나 바로 그 <매트릭스>도, 소포모어 징크스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먼저 장점. <매트릭스 - 리로디드>는 전편 못지 않게 인상적인 순간들을 빚어낸다.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을 가르는 트리니티의 모습과 큰 폭발을 앞에 두고 마치 발레하듯 우아하게 착지하는 그녀의 뒷태. 수퍼맨 날듯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네오, 일본도를 들고 자동차를 베어버리는 모피어스, 거대한 두 트레일러 트럭이 서로 맞부딪혀 이는 파동과 그 안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유영하는 인물들의 이미지까지. 그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모두 전편으로 부터 기인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매트릭스 - 리로디드>의 몇몇 순간들은 이 전체 시리즈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그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진이 아니고 동영상으로 움직이는 매체다. 저 이미지들이 사진 마냥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결국 저 인상적인 이미지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전체 이야기의 구조가 결국은 비디오 게임 속 퀘스트의 그것이다. 특정 NPC에게 임무를 받고 심부름하는 이야기. 그 심부름 끝나면 다음 심부름이 이어지고. 대표적인 게 메로빈지언과 그 일당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전혀 입체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인물들이고, 그저 네오와 그 동료들에게 특정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사실 심부름도 핑계고, 그냥 이어지는 추격과 액션을 위해서 있는 거지 뭐...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대부분 이런 식인데, 여기에 이상한 탐미까지 끼어든다. 그 의미는 알겠어, 기계는 할 수 없는 인간들의 춤사위.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며, 섹스까지 하는 인간들의 모습. 그것은 오직 인간들만이 할 수 있어서 그들을 기계와 구분짓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걸 이토록 길고 지루하게 묘사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지방 소도시 나이트클럽의 주말밤 풍경을 그려낸 듯한 시온의 댄스 파티 장면은 산만하고, 그것과 교차편집되어 그 주의분산을 가중시키는 네오 & 트리니티의 섹스 장면 역시 지루하다. 워쇼스키 형제의 이상한 탐미 정신을 보여주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페르세포네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탐미주의 때문에 존재하는 캐릭터인데, 그 자체로 너무 유치하고 재미없다. 트리니티 앞에서 네오랑 딥키스 하는 장면은 그 옛날 인터넷 소설 감성이라 좀 많이 깼음. 

전반적으로 그냥 지루한 영화. 그나마 중간중간 툭 튀어나오는 아름다운 몇몇 장면들과 쇼트들 덕분에 아주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만은 않았던 작품. 그런데 이거 2003년 여름에 개봉 했고, 또 이어 <매트릭스 - 레볼루션>이 같은 해 겨울에 개봉 했더라? 분명 개봉당시 극장에서 봤었는데 이 둘 사이 텀이 이렇게 짧았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검증된 블록버스터 작품의 속편들을 두 편 이상 함께 몰아찍는 전통 아닌 전통을 할리우드에 뿌리내리게 한 작품이기도 했네. 물론 그 전에 <반지의 제왕>이 있긴 했지만... 하여튼 할리우드의 이러한 제작전략은 이후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 2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 <어벤져스 - 엔드 게임> 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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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GA 2021/12/26 11:11 # 답글

    매트릭스는 몇 번이고 다시 봤지만 리로디드는 이상하게 다시 보기 보다는 인상적인 몇몇 장면만 돌려보게 되더라고요... 확실히 스토리의 재미는 전편보다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 CINEKOON 2021/12/29 12:38 #

    몇몇 장면만 다시 돌려보게 되는 영화... 왜 마이클 베이의 최근 영화들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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