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트릭스 - 레볼루션> 리뷰를 하며 1편과 2편을 포함해 3부작에 대한 호오를 부등호로 나타냈었다. 그 때 아마 [2편 < 3편 <<<<<<<<<<<<<<<<<<<<<<<<<<< 1편] 정도로 썼던 것 같은데, 이번 4편은 감히 부등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어떠한 것이었다. 바닥 밑에 또다른 바닥이 있었다니, 이것조차 매트릭스스럽네. 부제는 '부활'인데 이거 어째 부관참시에 더 가까운 거 아니냐고.
매트릭스포!
1편은 여러 철학적 이야기와 주제들이 읽히는 영화였다. 하지만 4편은 그보다도 감독이 이걸 만들며 했던 생각들을 먼저 읽게 되는 영화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읽게'되는 것이 아니라 '듣게'된다. 알아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등장인물들이 감독의 그런 생각들을 대사로 직접, 마구 말해준다. 오랜만의 등장이지만 그 자체로 뜬금없고 실속없는 분량을 보여주는 메로빈지언은 작금의 할리우드엔 이제 확장판과 스핀오프, 끝없는 속편들만이 남았다 조소하며 울부짖는다. 여기에 얼굴을 새롭게 갈아낀 스미스 요원은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를 들먹이며 메타발언들을 쏟아내고, 다시 토마스 앤더슨이 된 네오와 그의 게임회사 동료들은 '매트릭스' 그 자체를 과감히 언급하며 불릿 타임이나 슬로우 모션 등 <매트릭스>의 상징이된 장면과 연출들을 쉴새없이 지껄이기에 이른다. 기존 3부작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고 영화 제작사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오랜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속편을 연출하면서 할리우드의 그런 프랜차이즈 영화 기조를 비웃는다고? 게다가 영화의 퀄리티는 꽝. 이건 감독이 그냥 4편 찍기 싫었던 거잖아.
진짜로 찍기 싫었던 속편이라 그랬던 건지, 억지로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들이 속출. 전편에서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던 네오와 트리니티는 기계들에 의해 부활된다. 물론 기계들이 어떻게 그들을 부활 시켰는지는 모름. 그리고 왜 기계들이 3편에서 네오와 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도, 왜 기계들이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지도, 인류 최후의 도시였던 시온은 어디갔고 또 새로운 도시 이오는 어떻게 건설 되었는지도 모두가 미스테리다. 그리고 왜 네오와 트리니티를 매트릭스 새로운 버전의 근간으로 삼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한 억지일 뿐.
억지로 이어나가는 설정, 애써 이해해줄 수 있다. 정상참작 가능. 하지만 <매트릭스>가 갖고 있던 키 비주얼 마저도 모두 휘발된 상태. 영화 내내 불릿 타임을 그토록 많이 외쳐대면서도 정작 4편엔 제대로된 불릿 타임 연출이 부재하다. 그저 지리멸렬한 슬로우 모션들 뿐. 네오와 스미스가 낡은 화장실에서 벌이는 슬로우 모션 격투는 너무 느려 지루하고, 여기에 1999년 당시보다 너무 깔끔해진 기술력으로 다듬은 요원들의 총알 회피 묘사는 오히려 너프된 간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영화의 클라이막스... 트리니티와 네오가 오토바이를 타고 봇들을 따돌리는 액션, 이게 정말로 최악이다. 멋진 액션 안무나 동선은 커녕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전무. 그냥 네오가 장풍 쏘듯 손바닥 펼쳐 읏챠-하고 있으면 봇들이 다 나가떨어진다. 진지하게, 이게 재밌나?
어쩌면 워쇼스키는 좀비 영화를 더 찍고 싶었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기존 3부작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았던 봇 묘사. 사실상 좀비에 가깝게 연출되어 있고, 특히나 도쿄 신칸센 안에서 펼쳐지는 그 액션에서는 <부산행>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새 좀비 프랜차이즈 영화 출범 시키기에는 워쇼스키 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그냥 <매트릭스> 속편 안에서 해보고 싶었던 거 드디어 해본 느낌임.
여기에 기존 시리즈에서 역시나 일언반구 없었던 하이브리드 기계들의 등장 역시 깬다. 웬 가오리 같은 새끼가 펄펄 날아다니며 활약하는데 이건 뭐 <주피터 어센딩> 세계관에나 더 어울릴 법한 캐릭터잖아... 역겹게 이런 거 뜬금없이 왜 넣냐고...
이토록 자기 영화를 역겨워하는 감독의 노골적 태도는 실로 오랜만이다. 우리가 이걸 감히 <매트릭스>의 직계 속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불러도 되는 걸까? 감독이 그냥 동인지 팬픽 쓴 것 같다. 웃긴 건 그 감독이 바로 그 <매트릭스>의 창조자이자 원조집이었다는 것이다.
덧글
SAGA 2022/01/01 13:27 # 답글
키아누 리브스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존 윅 4가 걱정되기까지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