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5 16:27

호크아이 SE01 연속극


호크아이의 팬이다. 백발백중의 저격수라는 남자의 로망, 거기에 신과 괴물들이 날뛰는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오롯이 인간으로서 싸우는 수퍼히어로라는 점이 그 이유. 결연한 의지와 집중력, 그리고 책임감과 정서적 안정. 지금까지의 MCU 내에서는 호크아이로서 액션을 할 때 뿐만 아니라, 클린트 바튼으로서의 드라마도 풍부한 편이었다고 본다. 어벤져스 단원들 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는 점에서, 클린트 바튼은 언제나 다른 수퍼히어로들을 독려해왔다. 영화 바깥 쪽에 존재하는 사연이지만, 과거의 그는 나타샤를 양지로 이끌어냈다. 헐크 vs 헐크버스터 사태를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던 어벤져스를 위해 자신의 집을 세이프 하우스로 양보한 것 역시 그였고, 두려움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완다를 어벤져로 각성시킨 것 역시 클린트의 몫이었지. 아, 나는 그래서 호크아이가 좋다. 백발백중에 일격필살도 되는데 인간미도 철철. 그래서 더 아쉽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단독 영화는 하나 나와줬어야 하는 건데... 여전히 영화가 아닌 드라마 포맷이라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나와줘서 어딘가 싶기도 하고. 

호크아이의 그러한 인간적 컨셉이, 이번 드라마의 그것과 잘 맞아떨어졌다. 전반적으로 괜찮게들 봤지만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의 큰 규모 이야기에 좀 지쳐있는 타이밍이기도 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뉴욕 시내와 그 뒷골목을 무대로한 호크아이 개인의 이야기가 출몰. 아, 나는 이런 거 좀 더 보고 싶었던 것 같아. 이전 마블 드라마들에 비해 월등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해.

한낱 인간일 뿐이라던 그의 설정에, 그래서 그가 영웅인 거라고 화답하는 드라마. 호크아이는 이번에도 죽도록 구르고, 살갗이 패이도록 고생을 한다. 그런데 그 고생들이, 모두 일면식도 없던 한 아가씨를 위해서였음. 자신의 딸이나 아들들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아내를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다른 어벤져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그저 과거 자신이 품었던 망령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 한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가족과의 애틋한 연말을 뒤로하고 목숨을 건다. 사실, 이 드라마의 큰 약점 중 하나는 <로키>속 로키의 처지와 비슷하게 조연화 된 호크아이의 신세거든. 주인공이랍시고 제목에도 이름 걸고 있는데 정작 극을 이끌어가는 건 케이트 비숍이니까. 그에 대한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호크아이는 케이트 비숍의 우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묘사와 상술한 호크아이의 인간적 설정들이 매우 맑게 공명한다. 의지와 책임감, 실력으로 영웅이 된 호크아이를 진짜 자신의 영웅으로 받드는 진 주인공의 설정. 그 덕분에 케이트 비숍과 호크아이는 드라마 속에서 동시에 호감을 얻는다. 

그리고 정말 다행인 게, 케이트 비숍도 엄청 잘 뽑혔다. 헤일리 스탠필드 본연의 매력도 품고 있을 뿐더러, 호크아이를 아이돌 사생 팬 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꼴이 차밍 포인트. 벌써 '말하는 인절미'란 별명을 얻었던데, 극중 등장하는 골든 리트리버의 인간화인 것 같아 마냥 호감. 여기에 싸움은 또 왜 이렇게 잘해. 호크아이를 사수 삼아 가르침 잘 받으면 청출어람 할 수도 있겠지 싶다. 체술로 옐레나랑 한 따까리 할 수 있는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물론 옐레나는 많이 봐준 거겠지만. 

플로렌스 퓨의 옐레나 벨로바는 <블랙 위도우> 때보다 오히려 더 재미있어졌다. 아직 등장한 작품이 단 두 편 뿐이라 속단하긴 이르지만, 다른 여성 캐릭터와 붙였을 때 그 케미스트리가 더 사는 느낌. 나타샤와의 자매 케미가 이번엔 케이트와의 자매 케미로 잘 대체됐다. 진짜 자매들 치고 박고 싸우는 거 보는 기분. 특히 난데없이 케이트 집에 찾아가 "안녕~"하는 거에서 뻘하게 터졌음. 킹핀은 반갑긴 한데, 블립의 여파 때문인지 그 세력과 카리스마가 많이 깎인 듯한 인상이다. 시즌 피날레에서는 죽은 것처럼 묘사되는데 사실 안 죽었겠지. 나중에 데어데블이랑 한 판 더 했으면 좋겠다. 

드라마가 좀 중구난방인 듯한 구석도 있고, 저격수로서 호크아이의 면모를 좀 더 뽐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딱 이 정도 규모가 내 취향이다. 우주와 다른 차원으로 시밤쾅 나아가는 과감한 태도도 좋긴 한데, 그래도 가끔씩은 이렇게 MCU가 지구 위 어느 한 도시에 착-하고 붙어 있어줬으면 좋겠다. 

덧글

  • SAGA 2022/01/08 10:25 # 답글

    이 드라마와 영화 블랙 위도우는 세대 교체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블랙 위도우는 사망했고, 호크아이는 가족을 위해 은퇴한다고 하면 되고, 이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각자 후계자들이 만들어졌으니, 차기 어벤져스는 그들이 나오면 되고...

    그런 생각에서 본 터라, 케이트 비숍이 딱히 좋아보이지 않더군요. 케이트를 맡은 배우는 범블비 때부터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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