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7 14:57

플립, 2010 대여점 (구작)


영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배운 것들 중, 자꾸 반복해서 듣게 됐던 게 있다. 영화는 명백한 시각 매체이니, 내레이션이나 대사 등의 비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극중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는 이미지로써 전달하는 게 좋다는 것. 그래서 미장센이 중요하다는 소리. 나는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장들 역시 시각적 요소에 좀 더 탐닉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 관점에서 점수를 매기자면, <플립>은 빵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레이션 투성이거든. 그러나 이상하게도, <플립>은 그 내레이션 투성이의 구성이 영화의 이야기와 잘 어울려 좋은 효과를 빚어낸다. <플립>은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는 일기장에 좀 더 가까운 영화거든.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시절, 줄리와 브라이스는 첫 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거기서 부터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줄리는 브라이스를 좋아했다. 하지만 반대로, 브라이스는 줄리를 부담스러워 버겁게 느꼈고. 슬프게도, 우리네 현실은 거의 대부분 일방적으로 시작된다. 내가 그를 좋아하다 보니, 그 역시도 내가 좋아지는 순간. 물론 있겠지. 대부분의 커플들이 다 그렇게 시작되는 거고. 하지만 조금의 성공이 있으면 더 많은 실패가 있는 법. 내가 그를 좋아하지만, 그는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는 순간이 우리네 인생에서는 대부분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조금씩 더 슬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확률, 그걸 수학적으로 계산한다면 그 답은 무엇일까. 명백히 0이라거나 그에 수렴 되지는 않겠지만, 못해도 2/10 정도 확률 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나머지 8/10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라도 '선택'할 수 있다. 그게 최대한 인간적인 선택이라면 좋을 거고. 그 점에서 브라이스는 낙제점을 받을만 하다. 물론 줄리를 안 좋아할 수도 있지. 그게 브라이스의 마음인 걸. 하지만 그럼에도, 줄리의 마음을 조금씩은 헤아려 줬어야지. 그녀가 꾸준히 선물하는 계란을, 못 먹겠다 말할지언정 쓰레기통에 꾸준히 버리지는 말았어야지. 그녀의 삼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든지 간에, 적어도 남들의 웃음에 동조하지는 말았어야지. 초등학생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도 브라이스가 내린 선택들은 하나같이 다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플립>은 성장 영화로써 자신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브라이스를 친절히 대해준다. 다름 아닌 그의 일기 형식을 빌려서. 각각 브라이스와 줄리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해가며 진행되는 영화의 스타일 덕에, 우리는 엇갈린 상황 속 그들의 내면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기라는 게 언제나 그렇지만, 각자의 입장과 변명들을 잘 듣게 되지. 그 점이 성장 영화로써 <플립>이 가진 강점 되시겠다. 풋풋하고 설레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잘 들어주는 성장 영화랄까. 

줄리 아빠로 나오는 에이단 퀸. 최근 <가을의 전설> 다시 보며 그의 젊은 시절 누릴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렇게 나이 든 모습으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아, 무적의 10월생 동생을 두고 속 썩던 그가 이렇게 나이 들어 어린 딸과 살고 있다니.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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