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0 18:20

만달로리안 SE01 연속극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군계이학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일 것이다. 둘 다 영화와 TV 시리즈, 만화 등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그 세계의 변두리가 넓어지고 있고 또한 역사 역시 오래되어서 그 두 팬 집단 사이의 경쟁 아닌 경쟁 역시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나야 <스타워즈>에 대한 일편단심 충절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스타트렉> 역시 미덕을 갖고 있는 세계관이다. 특히 JJ 에이브람스가 전권을 잡은 리부트 영화 시리즈 이후로, <스타트렉>은 마치 애플의 IT 제품들을 떠올리게끔 하는 깔끔하고 유려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특유의 세련된 감각을 선보였다. USS 엔터프라이즈호 디자인 같은 거 봐라, 무슨 방금 뜯은 박스에서 꺼낸 프라모델 신품 같지 않나. 물론 전개에 따라 반 파손 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스타워즈> 파생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뭔 놈의 <스타트렉> 이야기를 이리 길게도 하나-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만달로리안>을 이야기 함에 있어, 그 세련 됐다는 <스타트렉>과 정반대 지점에 놓인 <스타워즈> 세계관의 느낌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세련된 깔끔함. <스타트렉> 세계관의 그 질감에, <스타워즈>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응수한다. 팬으로서 하는 칭찬의 표현으로, <스타워즈>는 생활 기스 잔뜩난 중고 물품 같은 세계관을 펼쳐낸다. 우주선과 드로이드를 비롯한 기계 장치들은 심심하면 고장이 나 스파크를 튀기고, 사막 행성의 거주민들 옷섶과 소매에선 모래가 흘러내린다. 시퍼런 우유를 들이키며 뒷통수에 꼬리 같은 촉수가 두 개씩이나 달린 여성 외계인의 춤사위를 관음증적으로 묘사해내는 세계. 시칠리아 섬의 마피아들 마냥 깡패 집단이 한 도시의 뒷배로 군림하는 세계. <스타워즈>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을 <만달로리안>이 찍었다.

외롭고 고독한 총잡이 주인공에, 이제는 액션 스릴러 장르 아래에서 일종의 하위 장르를 형성한 것이나 진배없는 '아이 보호하는 아저씨 이야기'까지. 어찌보면 드라마는 꽤 뻔한 이미지와 상황들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걸 끝내주게 잘했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만달로리안>은 그 옛날 할리우드의 웨스턴 장르, 그리고 일본의 찬바라 장르를 그대로 끌어온다. 어찌보면 원점 회귀다. <스타워즈>는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악한들에 대항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였으니. 그 구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하고 밀어붙인 게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가 연출한 네번째 에피소드. 산적들에게 주기적으로 털리는 시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 외부에서 들어온 무법자들. 이건 그냥 노골적으로 <7인의 사무라이>를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오마주하겠다 이거잖아. 

조금 빠른 결론. 그동안 팬들이 간절히 원했지만, 정작 보상 받지는 못하고 있던 이야기와 스타일의 드라마라는 것. 나는 <스타워즈>의 오랜 팬이었고, 심지어 여덟번째 에피소드였던 <라스트 제다이> 마저도 옹호 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하루 빨리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다. 그래야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그래서 <만달로리안>은 내게 굉장히 기쁜 경험이었다.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주장을 해왔던 팬들의 생각이 결코 틀린 게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사실 본가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9부작 스카이워커 사가만 본 사람들이라면 장고 펫과 보바 펫, 그리고 찔끔찔끔씩 등장 하는 만달로리안들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실사 영화 시리즈 내에서는 생각보다 깊이 탐구되어 본 적이 없는 종족 또는 집단이란 것인데, <만달로리안>은 그렇게 그동안 차근차근 정립되어온 <스타워즈> 위키 내의 정보들과 새로운 설정들을 잘 뒤섞어 만달로리안을 굉장히 매력적인 형태의 캐릭터들로 재조립 해냈다. "This is the way"로 대변되는 그들의 계율과 또 그로인한 당파적 싸움. 베스카로 철컹철컹 지지고 볶으며 업그레이드 되는 주인공의 전신 갑주. 모호하게 설명 되기만 했던 설정에 꽤 그럴듯한 실질적 묘사들을 더해 현실감을 얻어낸. 개별 에피소드들을 연출한 감독 각자의 공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쇼러너인 존 파브로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이 양반은 철갑옷 두른 주인공 이야기 하나는 언제나 엄청 잘 만드네.

또 앞서 말했듯이,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곳곳에 배어든 더스티한 느낌이 너무 좋다. <스타워즈> 특유의 중고품 같은 현실 감각. 여기에 뭔가 토속적인 느낌까지 주는 루드비히 고란손의 메인 테마까지. 전체적으로 <스타워즈>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반영해낸 올라운더형 작품. 아, 고독한 현상금 사냥꾼 총잡이 이야기 너무 좋다. 아직 시즌 2 감상이 남았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거지같은 에피소드9으로 스카이워커 사가는 얼추 마무리 했으니, 이제는 우리 앞에 펼쳐진 저 넓은 미지의 우주를 향해 나아갈 때다. 

핑백

  • DID U MISS ME ? : 만달로리안 SE02 2022-01-24 15:42:01 #

    ... 잘 나왔던 시즌 1에 결코 부끄럽지 않을 시즌 2.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을 클래식 3부작을 뒤로한채 새롭게 닦인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던 시리즈가, 시즌 2에 이르러서는 그 클 ... more

  • DID U MISS ME ? : 북 오브 보바 펫 SE01 2022-04-06 10:24:41 #

    ... 헬멧 한 번 다시 써보자는 이상하고 안일한 태도.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쩌면 이 모든 건 &lt;만달로리안&gt; 때문 아닐까-하는. &lt;만달로리안&gt;이 너무 많은 걸 빼앗아 가버린 거다. 상상해보자, 만약 &lt;만달로리안&gt;이란 드라마의 존재 자체 ... more

  • DID U MISS ME ? : 스타워즈 - 비전스 SE01 2022-05-24 14:43:11 #

    ... 거 아니냐고. 2. &lt;타투인 랩소디&gt; 시도는 좋았다. 디즈니의 손에 의해 &lt;스타워즈&gt; 은하계가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 &lt;만달로리안&gt;이나 &lt;북 오프 보바 펫&gt; 등의 TV 시리즈들을 통해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지 않나. 그러니까 이 은하계를 배경으로 할 뿐, 액션 어드벤쳐 ... more

  • DID U MISS ME ? :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 2016 2022-06-13 13:56:57 #

    ... 보다보면 &lt;토르 - 라그나로크&gt;는 물론 뉴질랜드인으로서 타이카 와이티티의 초록빛 긍지도 어쩐지 엿보이는 것 같고. 이처럼 MCU와 &lt;스타워즈&gt; 세계관 등을 넘나드는 동시에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들락날락하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의 만개 직전 시절을 경험해볼 수 있다 ... more

  • DID U MISS ME ? : 오비완 케노비 SE01 2022-08-03 11:29:20 #

    ... 최근 &lt;만달로리안&gt;과 &lt;북 오브 보바 펫&gt;을 통해 웨스턴으로써의 정서에 듬뿍 취해있던 프랜차이즈의 현 기조. 이제는 돌고 돌아 시리즈의 원류라 할 수 있을 ... more

  • DID U MISS ME ? : 안도르 SE01 2023-01-09 13:44:25 #

    ... 녕 그냥 페릭스 대소동이라고 할 만한 모양새. 다른 건 몰라도 거기서만큼은 뭔가 5분간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언했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뱀발 - &lt;만달로리안&gt; 보면서는 세세한 소품이나 세트 디자인 보면서 &lt;스타워즈&gt; 특유의 생활감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좋았었는데, &lt;안도르&gt; ... more

덧글

  • 잠본이 2022/01/21 12:47 # 답글

    역시 메탈 히어로 전문가 존 파브로(...?!)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