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청망청 술마시는 내용이지만, 결국엔 밸런스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영화다. 삶에 있어 무엇이든 간에 너무 적어서도, 너무 과해서도 안 된다는 것. 자신의 통제력을 발산해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균형을 찾아야만, 인생이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비유적으로 전달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술이란 소재보다 더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열정은 무릇 지나치면 과오가 되지만, 또한 너무 부족해도 권태가 되기 쉽다. 주인공 마르틴과 그 친구들의 상태가 딱 그러하다. 한 때는 각자의 분야에서 껌 좀 씹던 남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제자들에게 무시받는 지루한 고등학교 선생님들일 뿐. 지금의 청춘을 불티나게 즐기고 있는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님들이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그들이 얼마나 빛 났었는지 따위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런 그들에게 특히 마르틴은 재미없는데다 수업 시간 내내 오락가락해 자신감까지 없는 틀딱 꼰대 아저씨일 뿐.
직장인 학교에서 뿐만 아니다. 마르틴은 집에서도 무시 아닌 무시를 받는다. 언제나 바쁜 아내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야 대충 인사를 던질 뿐이고, 두 아들은 아비가 외출 하든 말든 소파에 누워 게임하고 TV만 본다.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의 장유유서 유교 사상이 끓어 오르더라. 어디 어른이 나가시는데 인사는 커녕 일어나지도 않고... 진짜 그거야말로 꼰대 같은 소리인 거 알고 또 맞는데, 그래도 이역만리 북유럽 땅에 유교 사상 전파하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임.
그랬던 마르틴이, 혈중 알콜 농도 0.05%를 유지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열정이 넘치는 수업에 제자들은 갑자기 <죽은 시인의 사회>라도 보고온 것인양 빠져들게 되고, 되찾은 왕년의 활기는 가족들에게 금세 전염된다. 그 부분에서 대단했던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더 헌트>라는 감독과 배우 콤비의 전작 때문에 이 영화 역시 조금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부분이 하나 없었다는 것. 관객들을 감정적 격랑으로 이끄는 비극의 맛은 맥주 마냥 텁텁하되 적절하고, 또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유머의 탄산은 샴페인 마냥 알맞다. 비극이다가도 희극이고, 웃다가도 또 우는 요절복통 삶의 파도. <어나더 라운드>가 제시하는 삶의 궤적과 취기의 과정은 썩 적절 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갑자기 뮤지컬이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과 관객 모두에게 결국 해방감을 선사한다. 술 때문에 친구를 잃었지만, 또 그를 추모하며 한 잔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취중진담. 우리네 인생이 어찌 그리 좋게만, 또는 어찌 그리 나쁘게만 볼 수 있겠냐는 취기어린 물음. 그리고 그 대답을 몸짓으로 대신해주는 마르틴의 춤사위. 올해가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다는 거 알고, 또 이 영화가 국내에선 1년 넘게 꽤 지각 개봉 했다는 것 역시 안다. 하지만 어쨌거나, 2022년 들어 본 영화들 중 제일 재밌게 본 영화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술도 잘 못하면서, 괜히 술 마시고 싶게 만들어준 영화. 아니면 나중에 따로 술 마시며 재관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뱀발 - 지구 반대편 이역만리 덴마크 아저씨들도 술 취하니까 우리나라 아저씨들이랑 별반 다를 것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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