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1의 강점은 튼튼한 캐릭터 조형술이었고, 시즌 2는 그걸 덜어낸 뒤 배배 꼬기만 해서 짜증이 났었다. 그렇담 오랜만에 찾아온 시즌 3는? 인물들 사이를 부러부러 배배 꼬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그러나 시즌 3에 이르러,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알아챈 뒤 그로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매력있는 인물들을 성장 및 확장 시키고, 그들 각자에게 재밌는 에피소드를 챙겨준 뒤, 결국에는 각자만의 결말을 알뜰히 챙겨주는 것. 자신이 만든 캐릭터들을 아끼고 보듬어준다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하고 효과적인 태도. 뭐랄까, 시즌 2에 실망했던 내가 다시 시즌 4를 기다리게끔 만들어준 공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
시즌 3가 되어 가장 확고해진 지점은, 드라마가 일종의 혁명 서사의 틀을 띄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교생을 모아놓은 대강당에서 대뜸 춤추며 등장한 호프 교장. 아니, 세상에 어떤 교장이 전교생 앞에서 춤추는 것으로 자기소개를 대신 하냐고. 게다가 무어데일 고교의 전 교장은 그딴 거 1도 모르는 꼰대 중의 꼰대 아니었던가. 짐짓 학생 친화적 교장으로 보이는 호프의 등장에 무어데일 고교의 학생들은 옅은 희망을 느낀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자들은 애초부터 그랬던 자들이 아니라 역시 결국엔 타락한 자들 아니겠는가. 자신만의 몽상으로 학교를 이끌어가려던 호프 교장은, 자신이 취임한 학교가 도저히 주체못할 섹스광들의 소굴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폭군 아닌 폭군이 되어가는 호프 교장. 그런 그녀 앞에, 우리의 주인공들이 이합집산 해가며 각자만의 이야기를 전개시켜낸다.
원래부터도 퀴어에 열려있던 시리즈이긴 했지만, 시즌 3가 되니 그 개념이 확장된다. 단순 게이나 레즈비언 뿐만 아니라 트랜스 섹슈얼 등까지 포용하는 모양새. 무분별한 PC주의적 행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 드라마 보면서 억지 PC라고 까는 건 그 자체가 억지로 까는 거임. 애초부터 폭풍 같은 청소년기 안에서 각자만의 정체성을 찾고 또 공고히 하려는 아이들의 성장물이니, 기획의 시발점 자체가 그쪽이었다는 거지.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오티스의 단짝 에릭과 애덤의 관계다. 주인공의 단짝 게이에 커플링까지 되어 등장 하지만 노골적인 섹스 묘사의 희생양으로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의 절친으로 현명한 게이 스테레오 타입만으로 묘사되는 존재 역시도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도 에릭이 개 열받는 건 팩트. 아니, 씨바 솔직히 애덤 앞에서 자기 다른 남자랑 키스했다는 사실 까발리는 건 지 마음 편하게 하겠단 고약한 심보 아니냐고. 물론 애초에 그 키스 안 했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냥 지나가버릴 수 있는 부분 임에도 확실히 챙겨넣은 인물들 서사가 특히나 마음에 든다. 밀번의 임신을 두고 과연 자신의 친자가 맞을까 고민하는 야코프에게는 과거의 아린 상처가 있었던 것으로, 마냥 꼰대에 무뚝뚝한 줄로만 알았던 그로프가 형과의 관계에서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것으로 설정이 보강되고 또 그로인해 인물들 서사가 완성된다. 그로프가 형한테 버럭 화내는 장면에서는 나까지 통쾌 하더라고. 여기에 서로의 엄마가 되어주자는 메이브와 에이미 사이 관계, 대사들도 역시나 좋고.
물론 단점이 아주 없는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때때로 인물들 사이 관계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해 보인다. 여기에 오티스와 메이브의 결말은... 그냥 순전히 시즌 4 내기위한 핑계로 밖에 안 보이던데. 너무 느닷없이 떠나는 게 사실이긴 하잖냐. 이제 뭔가 좀 제대로 가나 싶었는데 말이지. 그럼에도 보는내내 충분히 내 마음을 간질였고, 그래서 시즌 4를 다시 기다리게 되었다. 그 정도면 목적한 바는 다 이룬 시즌인 거지, 뭐.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