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6 15:35

모럴센스 극장전 (신작)


BDSM을 로맨틱 코미디로 다루겠다는 시도 자체가 가상한 것은 맞지. 영화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은 소재인데다가, 이 방면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적은 없으니까. 게다가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맡은 게 다른 곳도 아니고 넷플릭스 아닌가! 섹스와 폭력 묘사에 한없이 관대한 넷플릭스! 제작진에게 투자금도 낭낭하게 챙겨주어 해볼 거 다 해보라고 밀어준다는 넷플릭스! 전세계 동시 공개가 가능한 배급망을 통해 탈 한국적 전개가 가능한 넷플릭스! 그러니까 일말의 기대를 해, 안 해?


스포센스


결국 그 기대감은 어김없이 와장창이다. 아이돌 출신 배우인 서현과 이준영을 캐스팅한 것부터 영화가 BDSM을 근본적으로 자세히 다루기는 커녕 그저 피상적인 소재로써만 사용할 확률이 높았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365> 마냥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 장면을 기대했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BDSM을 내건 영화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럴 듯한 BDSM 장면과 섹스 씬을 보여줬어야지. 단순 눈요깃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소재를 최대한 성의있게 활용할 줄은 알았어야 했다는 거다. 게다가 BDSM이라는 게 극중에서도 묘사되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변태적인 취향'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요소 아닌가. 애시당초 이런 소재를 채택 했으면,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또 그로인해 성장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겠다 영화 스스로가 공언한 거지. 근데 대체 어느 구석에서 이 두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건지 진짜 1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냥 귀여운 판타지다. 물론 안다. 로맨틱 코미디는 특히나 여성 관객층을 주 타겟으로 삼고 있는 장르란 사실을. 고로 남자 주인공이 멋지고 귀엽게 나오는 거?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 하지만 이 정도면 도를 넘어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모럴센스>의 남자 주인공 정지후는 그저 일반적인 여성들이 생각하기에 자칫 이상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요소들로 점철된 거짓말 같은 존재다. 잘생겼는데 본인이 그걸 스스로 지나치게 과시하지도 않고, 잘난체도 하지 않으며, 회사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알뜰히 챙긴다. 여기에 알게 모르게 또 숨겨지고 가려진 슬픔도 있어. 그런데 그걸 다 떠나서 여자 주인공이 기라면 기고 짖으라면 짖는 강아지 같은 속성까지. 맞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이 남자 주인공을 일종의 강아지로 치환하려 애쓴다. 사실상 그걸 위해 BDSM이란 소재를 끌어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 

여기에 여자 주인공 역시 단선적이다. 그녀는 그저 융통성 없고 사무적인 딱딱한 말투를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BDSM을 소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BDSM을 접한 이후 딱히 달라지는 게 없다. BDSM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거나, 새로운 나를 찾아 어찌되었든 성장해야지. 하지만 <모럴센스>는 그딴 데에 역시 1도 관심없음. 고로 남자 주인공은 그냥 강아지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이를 리드해야할 여자 주인공은 그냥 재미가 없는 인물로 전락 하고야 만다. 

BDSM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르지만, 그걸 심도 있게 전달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 아니, 일단 BDSM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도 이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알게 되어야만 하는 거 아냐?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졌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설명은 단편적이고 그걸 끝장나게 묘사하는 장면 역시 없다. 아니, 애초에 이 영화는 섹스 장면이 전무하다. 그렇다고 나머지 장면들이 야하거나 자극적인 것도 아냐.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와놓고 이렇게 담백하게만 다루는 것 역시 재능이라면 재능.

세부 전개도 몽땅 대충이다. 그냥 다음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억지로 붙인 브릿지들의 연속. 문자를 잘못 보낸 직후 지우와 마주친 지후는 왜 멍청하게 인형 탈을 쓰고 자빠졌는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저 귀엽게 보이기 위해서? 어리숙하고 강아지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 딱히 오해할 만한 워딩도 아니었는데, 왜 지후는 병원 앞에서 지우에게 급한 커밍아웃을 내뱉는가? 이것 역시 이후 전개를 위해서지. 왜 뜬금없이 주인공의 친한 언니 캐릭터는 갑자기 BDSM의 일원이 되는가? 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커플이 자신들의 로맨틱한 순간을 반납해야하니까. 이런 젠장. 

제일 치명적인 건 영화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위기를 타개하는 부분이다. 아니, 그래서... 지우는 어떻게 그 난관들을 다 헤쳐나간거라고요...? 신입이 녹음 볼펜 갖고 있는 건 어찌 알았다고요...? 거기 다른 직원들 흑역사가 담겨있는 건 그냥 감으로 찍은 거라고요...? 이건 그냥 제작진이 영화를 감으로 찍은 거잖아요...

흥미로운 소재를 채택했으면, 최소한 그 소재에 예의를 다 했음 좋겠다. 그냥 홍보용 입간판 정도로 써먹고 바로 뱉어버리지 말고. 이쯤 되면 이건 그냥 호객을 위해 억지로 넣은 설정처럼만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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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GA 2022/02/20 20:39 # 답글

    개인적으로 소녀시대 팬이라... 나름 기대했었는데... 유튜브에 이 드라마 리뷰 영상을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더군요...
  • CINEKOON 2022/03/28 13:07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애가 서현이셨나요
  • SAGA 2022/04/02 08:49 #

    최애는 태연이었지만, 원래 걸그룹의 막내는 "우리 막내 우쭈쭈" 하는 게 국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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