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론 지금까지의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들었던 영화들을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하고 있었다. 분류 기준은 다름아닌 무게. 무거운 영화들과 비교적 가벼운 영화들. 무거운 쪽 카테고리에는 아무래도 <매그놀리아>나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팬텀 스레드> 같은 영화들이 들어있을 것. 그렇담 가벼운 쪽에는? 당연하게도 <펀치 드렁크 러브>가 치고 나와야지. 여기에 <인히어런트 바이스>도 살짝 이 쪽이라고 생각. 그리고 그 라이트한 라인 업에, 이번 <리코리쉬 피자>가 스리슬쩍 들어온다. 어떻게 보면 PTA의 영화들 중 <펀치 드렁크 러브>보다도 더 가볍고 산뜻한 영화인 것 같음.
얼렁뚱땅 돌고돌아 결국에는 니캉내캉 하는 영화다. 20대 중반의 문턱을 밟고 선 알라나, 그리고 그보다 열살 더 어린 10대 중반의 게리. 둘은 각각 20대와 10대를 대표하면서, 10~20대로 묶여지는 이른바 청춘들의 불완전성과 그로인한 불안함을 표현 해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우리는 죽도록 들었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는 거,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 역시 질리도록 들었다. 그러니까 빛나는 청춘의 시기에 피와 땀을 흘리지 않을 수는 없다는 거, 이제는 우리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안다고 해서 그 청춘이 흐릿하게만 보이는 미래 앞에 불안함으로 오들오들 떨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알라나와 게리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들 청춘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알라나는 직업으로 연결되는 꿈에 확신이 없다. 그녀는 이런 저런 일들을 시도해 보고, 또 갑자기 꽂힌 신 가치관으로 새 직업을 찾는다. 그러나 다 그 때 뿐. 반면 게리는 자신의 커리어를 확신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배우 생활을 자랑으로 여기고, 끝내 그 꿈이 실패에 맞닿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른 일 하면 되지, 뭐. 그래서 열다섯이란 나이에 물침대 사업도 벌여보고, 오락실 사업도 벌여보고. 하지만 게리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만큼은 놀랍도록 흔들린다. 알라나에게 '넌 내 일평생의 사랑이야'라고 고백해놓곤 금방 다른 여자를 찾는다. 물론 중간에 알라나가 먼저 다른 남자 만난 건 맞지. 하지만 그 이후로도 줄곧 게리는 다른 여자들을 찾아 줄기차게 돌아다닌다. 아니, 이쯤 되면 이것도 확신에 찬 자신감이라고 해야할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각자 다른 방향으로 어설프게 흔들리던 둘은 영화의 결말부가 되어서야 끝끝내 서로를 향해 달음박질 한다. 그 이미지에 있어서는 PTA의 전작 <펀치 드렁크 러브>도 떠올랐고. 그 영화도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라기에는 똘끼 충만한 영화였는데 <리코리쉬 피자>도 그에 못지 않은 몽롱한 감각이 있는 것 같음. PTA 요즘도 약하면서 영화 찍나? 어째 이 영화도 마약 하면서 만들었을 것 같다. 영화가 딱 그런 느낌이걸랑.
필름으로 촬영된 LA의 70년대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PTA의 촬영에는 확실히 고혹적인 측면이 있다. 아, 그리고 중간에 웃겼던 장면. 오일 쇼크를 정통으로 맞고도 겨우 얻은 기름으로 장난치던 어린 남자애들과, 분노 조절이 안 되서 길거리에 깽판 놓고 있다가 이내 예쁜 여자 둘이 걸어오니 바로 작업 멘트 갈기던 남자 사이에서 현타를 느끼던 알라나 모습. 그게 너무 웃겼다. 남자는 어려서도 애고, 다 커서도 애라더니 딱 그 꼴을 잘 보여준 것 같았음.
PTA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은 영화라곤 말 못하겠다. 라이트 급 안에서도 차라리 <펀치 드렁크 러브>가 더 낫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영화란 건 또 아님. 뭔가 중독적이다. 이 세상에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도무지 힘든 건 PTA의 영화들 뿐 아닐까 싶다.
뱀발 - 스카일러 거손도는 요즘 좋은 영화들에 얼굴 많이 비추네. 몇 해전의 케일럽 랜드리 존스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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