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8 12:03

시라노 극장전 (신작)


조 라이트의 첫번째 뮤지컬이 아닌가 싶은데, 그걸 잘 해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가뜩이나 그 형식이 강조되는 장르인데, 연출이나 연기 등등 영화의 요소 요소가 모두 다 자기 주장 강해. 그러니까 형식 위에 드러난 형식들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진달까. 물론 음악이나 뮤지컬 넘버는 좋았지만, '뮤지컬 장르 영화'로써 이 영화를 규정할 땐 마냥 박수칠 수만은 없단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박수를 받아 마땅한 존재가 이 영화에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 시라노를 연기한 피터 딘클리지. 아, 피터 딘클리지! 배우라는 직업의 힘! <시라노>는 피터 딘클리지의 이후 필모그래피에서 꽤 중요한 방점으로 기억될 것 같은 영화다. 

우리는 의외로, 피터 딘클리지를 오랫동안 봐왔다. <망각의 삶>에도 출연 했었지만 어쨌거나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영화는 2006년의 <페넬로피>와 2008년의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일 것. 그리고 이어지는 대표작이 2011년부터 시작된 <왕좌의 게임>일 거고... 이렇듯, 우리가 그를 인지하게 된지도 어느새 15년여가 흘렀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 <왕좌의 게임>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했다고들 말하지. 하지만 웃긴 게, 정작 나는 그 <왕좌의 게임>을 보지 못했다. 고로 내게 피터 딘클리지는 <페넬로피>와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 그리고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픽셀>, <쓰리 빌보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속 모습들이 전부였음. 해당 영화의 제목들을 쭉 훑어보면 알겠지만, 그들 중 피터 딘클리지가 그의 멜로 드라마적 감수성을 드러낼 만한 작품은 전무했다. 그러니까 이 남자의 멜로 연기가 전혀 상상되지 못했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다행이다! 피터 딘클리지에게도 <시라노> 같은 영화가 생겼으니. 

영화는 전통적인 시라노 이야기를 따른다. 때문에 진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엔 피터 딘클리지의 멋지도록 절절한 연기가 있다. 그 덕분에 <시라노>는 회생의 기회를 얻는다. 자신의 작은 덩치를 얕보고 덤비는 상대들을 냉소와 함께 무찔러 버리는 상남자의 패기. 여기에 스스로의 신체적 특징을 단점이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액션과 유머의 주 재료로 사용하는 과감한 여유. 멋진 목소리로 나지막히 불러보는 아름다운 노래. 그리고, 오래도록 사랑해왔던 한 여자 앞에서 짓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까지.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시라노>는 피터 딘클리지 없었으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절반 정도는 손해본 영화였을 거다. 사실 <어톤먼트>나 <다키스트 아워> 정도를 제외하면 조 라이트의 영화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 그래서 이 영화 보러 극장을 찾았을 때도 별다른 기대를 안 했었어. 하지만 그랬던 내가, <시라노>를 보며 두세번 정도는 눈에 눈물을 품었던 것 같다. 그 눈물의 값은 당연히 피터 딘클리지가 다 받아갔어야 하는 거고.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전반적인 전개는 뻔하게 느껴지고, 여기에 헤일리 베넷이나 벤 멘델슨 등의 좋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음에도 그들 각 캐릭터의 매력은 별로 잘 안 느껴진다. 아까 말했듯 영화의 연출들이 종종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 역시 있고. 하지만 피터 딘클리지의 표정과 말투, 몸짓 만으로 영화가 내게 감동을 줬다.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바로 배우라는 직업의 힘이나 축복 아니겠는가. 피터 딘클리지의 여러 얼굴들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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