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4 18:25

레고 배트맨 무비, 2017 대여점 (구작)


좀 워딩이 강할 수도 있는데,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 로빈>은 일종의 매음굴 같은 분위기까지 풍기는 기괴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분명 웃으라고 넣은 유머들일 텐데 정작 보는 이들의 입꼬리를 올리는 데까지 성공하지는 못하고, 여기에 배트맨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원작에서 가지고 있던 본연의 매력을 싹 다 휘발시켜 버리는 기묘한 재해석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이 좋지도 않았음. 이렇듯 여러모로 <배트맨 & 로빈>은 배트맨이란 캐릭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놀리는 느낌이 강한 영화였다. 하지만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 <레고 배트맨 무비>는 <배트맨 & 로빈>과는 달리 배트맨이란 캐릭터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그 요소 요소들을 모두 꼬집어 잘 놀려댄다. 그러다보니 보는 관객들 입장에서도 낄낄댈 수 밖에. 

지금까지 극장에 걸린 모든 배트맨 관련 영화들 중 가장 뻔뻔하고 자만심 쩌는 배트맨이 나오는 영화. <레고 배트맨 무비>는 원작에서 '뱃신'이라고 놀림받던 바로 그 배트맨의 만능 면모까지 대놓고 끌어와 볶아낸다. 짐짓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과 임무에 앞서 "그걸 어떻게 해?"라고들 물으면, "배트맨이니까!"로 철면피 깔고 대답하는 영화의 태도가, 배트맨이란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의 지하실에서 사는 거예요?"라는 로빈의 액션에 "아니,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의 다락방에 사는 거야"라고 리액션하는 것 따위의 개그가 일품. 

여기에 배트맨이 갖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표현해낸 영화이기도 하다. 버튼버스 특유의 음울했던 시절 정도를 제외하면, 이후 배트맨이나 브루스 웨인이 고독에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을 묘사했던 영화가 거의 없지 않은가. 환장의 짝꿍으로 로빈이 붙기 시작한 <배트맨 포에버>와 직후의 <배트맨 & 로빈>만 해도 배트맨이 외로움을 느낄 짬 따위 없었지. 영화 전체가 대환장 파티 분위기인데 어떻게 외로워.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이나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 외로움과 고독감을 아예 묘사하지 않았던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에 더 치중했던 양반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래고 배트맨 무비>는 그 부분만을 지독하게 판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새 가족에 대한 부담감과 공포, 그러면서도 끝내는 연대하게 되는 뉴 배트 패밀리 & 수퍼빌런 파티. 가족의 소중함을 다루는 가족 영화를 만드려면 이 정도는 만들어야 했던 거다, <배트맨 & 로빈>아. 

다만 그럼에도, 워너 스튜디오의 주요 IP들이 총출동하는 후반부 클라이막스는 다소 산만해 아쉽다.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은 배트맨 월드인데, 굳이 볼드모트에 사우론 등까지 끌어와야 했을까. 솔직히 말해 그냥 영화사의 자랑 정도로만 느껴져 좀 느끼하고 싫었음.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워너 얘네는 최근 <스페이스 잼 - 새로운 시대>에서도 그거 했었잖아. 아주 그냥 자기네 재산들에 자부심이 대단하구만.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IP들이면 속편 관리들이나 좀 잘하지...

배트맨의 팬으로서, 최고의 배트맨 목소리로는 언제나 케빈 콘로이를 꼽아왔다. 하지만 개그 버전의 배트맨이라면 윌 아넷 목소리 역시 꽤 괜찮게 느껴지는 것 같다. 스스로의 뻔뻔함을 뻔뻔하게 잘 알고 있는 듯한 그 목소리가 존나 웃기고 맘에 듦. 알프레드 목소리를 연기한 랄프 파인즈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외양 마저도 알프레드와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앤디 서키스 이후 언젠가는 한 번쯤 연기해봐도 괜찮을 것 같음. 근데 알프레드와 볼드모트 사이 배우 개그 같은 게 있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아닌가? 너무 노골적이라 별로였으려나. 

<레고 무비>와 마찬가지로 비주얼 하나는 끝장난다. 그야말로 비주얼 쇼크. 너무 화려하고 너무 멋져서, 영상으로 하는 마약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보는내내 들었다. 

핑백

  • DID U MISS ME ? : 더 배트맨 2022-03-16 14:28:35 #

    ... 도 액션 위주로 상대할 수 밖에 없는 악당들이니 그닥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뱀발 - 앤디 서키스의 알프레드는 너무 젊고 너무 강해보여서 &lt;레고 배트맨 무비&gt;의 알프레드 마냥 배트맨과 함께 현역으로 뛸 수도 있을 것만 같다. ... more

덧글

  • 잠본이 2022/03/14 18:58 # 답글

    더빙판의 이정구님 뱃맨도 기가 막혔죠. 캐스팅 담당자에게 보너스 줘야함(...)
  • CINEKOON 2022/03/28 13:02 #

    제가 더빙판은 본 적이 없어서. 애플 TV에 더빙 버전이 있나 한 번 확인 해봐야겠네요.
  • 잠본이 2022/03/28 13:05 #

    상대역인 조커가 배한성님이 아닌게 한이 맺힐 정도로 기막힌 캐스팅이었슴다(포인트가 괴상하다)
  • 포스21 2022/03/15 00:15 # 답글

    유쾌한 작품이었죠
  • 존다리안 2022/03/15 11:15 # 답글

    설마 더 뱃맨의 찐따들 징징대기보다 이게 나은 겁니까?
  • CINEKOON 2022/03/28 13:03 #

    아뇨, 낫다기 보다는 애초 지향점이 다른 작품이라...
  • SAGA 2022/03/27 21:26 # 답글

    아... 이 영화... 오프닝부터 기가 막혔죠!

    DC... 배트맨이 먹여살린 회사... 아니, 왜 슈퍼맨? 꼬우면 덤벼!
  • CINEKOON 2022/03/28 13:03 #

    그 뻔뻔한 자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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